김구학
金龜鶴1864 ~ 1909. 3. 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64년경 강원도 회양군(淮陽郡) 구화천동(舊化川洞)에서 출생하였으며, 농업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농민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1907년 한일신협약(정미7조약)과 함께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군대까지 해산당하는 등 국권 상실이 현실화하자 전국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나 국권 회복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07년 군대해산 이후에는 해산 군인들이 대거 의병에 참여하였을 뿐 아니라 평민 주도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어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원주의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에서 활동하였던 김보삼(金甫三)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다. 먼저 강원도에서는 춘천과 원주·강릉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부대가 결성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두각을 보인 의병부대는 원주에서 거의한 민긍호 부대다. 즉, 강원도 내 의병 활동은 1907년 8월 민긍호가 이끄는 원주진위대와 원주 주민이 함께 거의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강원도 내 각지로 확산할 수 있었다. 민긍호 의병부대는 원주우편소와 일본 경찰서를 습격하였으며, 이후 소단위로 의병부대를 재편성하여 제천(堤川)·죽산(竹山)·장호원(長湖院)·여주(驪州)·홍천(洪川)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김보삼은 민긍호 부대에 참여한 뒤 독자적으로 의병부대를 결성하여 본대와 연대하면서 유격전을 통해 일본군에 타격을 주었다. 민긍호 의병부대에서 분진한 김보삼 부대에 편성되어 이완보(李完甫)·김순옥(金順玉) 등과 함께 의병 활동을 하였다. 먼저 김보삼의 지휘 아래 동료 의병 수십 명과 함께 1907년 10월 17일 밤 강원도 흡곡군(歙谷郡) 신읍(新邑) 등의 인근 마을에 들어가 흡곡순사분파소를 습격하여 순사용 검 1자루와 동복 1벌을 노획하였다. 이어서 같은 동네에 있는 일어(日語) 학교를 습격하여 교사 모토지마 에이지(元島榮次)와 우편배달부 미야자키 하루키(宮崎春喜)를 살해하고 양총 1정을 노획한 뒤 마을을 떠났다. 이어서 10월 20일 오전 7시경 동료 의병들과 함께 통천군 통천읍(通川邑) 등의 부근 마을에 잠입하였으나,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 순사와 수비병의 습격을 받고 퇴각하였다. 이 전투에서 왼발 관통 총상을 입고 자택에서 응급 치료를 받던 중에 통천 헌병분대에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 결국, 1908년 11월 17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내란죄로 교수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이듬해인 1909년 1월 19일 경성공소원과 2월 6일 대심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었으며, 같은 해 3월 9일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홍동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