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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점

愼鏞點

19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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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용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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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巖)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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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영암농민조합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 출신이다. 일제 측 기록에 의하면, 1933년 당시 24세로 1910년생으로 추정된다. 1931년 8월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 영암 지역 사회주의자들은 비밀 결사 연구회를 조직하고 같은 해 10월 합법적 농민조합을 결성하려 하였으나 일제 경찰의 방해로 실패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암군 덕진면의 문사훈(文士勳)·박수봉(朴壽奉)·신용주 등과 함께 소작권 이동 문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이들은 1932년 3월 22일 밤 덕진면 영보리의 청년회관에서 박유성(朴裕成) 등 영암농민조합(靈巖農民組合)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소작권의 안정화 문제에 대해 협의하였다. 신(新) 소작인을 배척하고 구(舊) 소작인이 계속 소작하게 하기 위하여 같은 해 3월 23일부터 5월까지 여러 차례 단체행동을 결행하였다. 같은 해 5월 1일 노동절을 기하여 최판옥·김판권 등의 주도로, 일제의 경계를 피해 그해 6월 4일에 농민들과 함께 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였다. 이들은 당일 영보정(永保亭) 뒷산에서 덕진면 내 영보리·운암리(雲岩里)·노송리(老松里)·장암리(場岩里)(현 영암읍) 등의 청년회원 약 70명과 함께 운암리·백계리(栢溪里) 방면의 소작권 이동 방지를 위해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하고 노동절 기념식을 열었다. 지주의 횡포에 저항할 것을 결의한 이들은 선두에 적기(赤旗)를 세우고 대오를 만들어 노동가(勞動歌)를 부르며 행진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을 일명 ‘영암농민 데모사건’이라 하여 1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붙잡혔다. 1933년 6월 22일 예심이 종결되어, 같은 해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240일 본형 산입)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으나, 1934년 2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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