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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옥

金光玉

미상 ~ 1909.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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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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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장단(長湍)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장단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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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2013)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3)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강서면(江西面) 자하동 출신이다. 1909년 장단군자하동 일대에서 45명의 의병과 함께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였다. 1909년 1월에 강원도 경찰부장이 작성한 「폭도 수괴에 관한 조사보고」에서 한때 연기우(延基羽)와 함께 의병의 수괴로 지목한 인물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도 있다. 그가 소속되었던 경기 장단군의 김수민(金秀民) 의병부대는 강원도의 연기우 의병부대와 연합해 활동하기도 하였고, 1909년 무렵에는 점차 대규모 의병부대가 소규모로 쪼개져 유격전을 전개하는 양상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1907년 고종(高宗)이 강제 퇴위되고 대한제국 군대마저 해산되면서 전국의 의병이 다시 봉기하였을 때 김수민(金秀民) 의병부대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1907년부터 전개된 정미의병(丁未義兵) 당시 활약한 농민 출신 의병장 김수민은 경기 장단군을 거점으로 하여 300여 명으로 부대를 꾸린 후 경기 북부와 강화도 일대를 넘나들었다. 특히 김수민 의병은 1,000여 명으로 늘어난 부대를 이끌고 장단군 고랑포(高浪浦)·풍덕군 영비포(領非浦)·예성강(禮成江)의 창릉포(昌陵浦) 등에서 일본군과 싸우며 활동 영역을 넓혔다. 1907년 11월에 들어서자 김수민은 이인영(李麟榮)을 총대장으로 하여 조직된 13도 연합 의진에 합류하고자 경기도 양주로 이동하였다. 이때 13도 연합 의진의 핵심 역할을 하던 허위(許蔿)는 2대 총대장에 올라 이강년(李康䄵)·민긍호(閔肯鎬)·김수민 등과 연합하여 서울진공작전을 재차 추진하였다. 그러나 1908년 6월에 허위마저 체포·순국하면서 서울 진공 계획이 수포가 되고 말았다. 『경성신보(京城新報)』에 의하면 이때 소규모 부대의 부대장 역할을 하면서 연합 작전에 참여하였다가 작전 실패 후 잠시 귀순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의 감시를 피해 10월에 다시 의병부대에 합류하였다. 김수민 부대 역시 이후에는 경기 동북부 일대를 중심으로 하여 다시 활동을 이어나갔다. 1909년에 접어들면서 강원도의 연기우, 황해도의 이진룡(李鎭龍) 의병부대와 함께 연합작전을 펼치며 재기를 도모하였다. 하지만 1909년 8월 김수민이 서울 진공을 위해 적정을 살피고자 잠입하였다가 체포되어 순국하면서 부대는 구심점을 잃고 말았다. 이때 남은 부대원들과 함께 재기를 도모하고자 군자금 모집 활동을 이어나갔다. 1909년 10월 30일 강서면 구탄리(龜灘里)의 유진은(兪陳銀)에게 벼 2석을 납부하게 하였다. 이어서 자하동에서 유보연(柳甫連)·김기서(金基西) 등과 함께 주민 전경칠(全景七)에게 벼 3석을 납부하게 하는 등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이때 김기서 등과 함께 체포되어 다수의 무기를 압수당하고 압송되었다. 그런데 압송 도중 강서면 마성리 산 정상에서 의문의 한국인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이에 이들을 호송하던 일본군은 그 사람에 대한 검문하였다. 이 틈을 엿보아 산으로 뛰어들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이를 발견한 일본군에 의해 피살·순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3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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