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면
宋宙勉1856. 7. 26 ~ 1910. 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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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장(1977)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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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장(1977) 1856년 7월 26일 전라남도 화순군(和順郡) 남면(南面) 사평리(沙坪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며, 자는 정여(正汝), 호는 규사(圭沙)이다. 아버지는 송치만(宋致萬)이다. 1901년 6월 21일 통신사(通信司) 전화과(電話課) 주사(主事)가 되었고, 1902년 화순읍의 향약장이 되었으며, 1903년 8월 12일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으로 임명되었다.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 체결되자 그 부당함을 주장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갔다. 1910년 8월 경술국치의 소식을 듣자 “우리의 영토를 돌려달라”는 요지의 혈서(血書)를 일제 통감부에 보내고, 절명시(絶命詩) 5수(首)와 계자서(戒子書)를 지은 후 독약을 마시고 자결하려다가 집안 사람들에게 구출되었다. 그러나 그날 밤 마을 앞 강물 사평천으로 나아가 몸을 묶은 후 투신하여 사망하였다. (음)8월 15일 밤이었다. 절명시 5수는 다음과 같다. “백수(白首)에 비가(悲歌)로 저 하늘에 호소하며 / 가을 밤 칼 두드리며 눈물 주룩 흐르네 / 지금 구중궁궐의 봄빛이 어디로 갔을까 / 선도(仙挑)같은 오백년이 적막하게 되었네 // 땅에 가득한 성진(腥塵)이 갑자기 하늘을 가려 / 궁궐이 처량하게 잿더미가 되었네 / 아버지 잊는다는 꾸지람 면치 못하나 / 국운을 보답함에 당하여 어찌하리 // 충과 효를 모두 이루기 어려운 것은 / 고금이 이미 그러하네 / 부모 모실 날도 며칠 남지 않고 / 금년에 나라를 잃어 가슴 아프네 // 두 아우가 곁에 모시고 있고 / 손자들이 또 앞에 나열해 있네 / 임금 은혜 갚고 늙은 아버지 잊으니 / 스스로 송사해 봐도 죄가 앞서네 // 일이 많은 나라에 인재가 없어 / 백발의 단심은 나라 걱정 깊었네 / 천년 동안 삼성(三聖)의 법이 전하고 / 한 임금 밑에 두 임금 섬길 마음 없네 / 바다에 솟은 해는 혼이 있어 / 이슬 떨군 황화에서 역사를 찾을 수 있네 / 인간에게 가장 큰 것이 충과 효라고 / 옛날 아버지의 교훈을 명심하였네 // 숲속에 새들도 슬피 우니 / 천기(天機)도 절로 불평하네 / 하루아침에 봉소(鳳詔)가 없어지고 / 온갖 일이 바람 앞에 깃발같네 / 대궐의 누종(물시계)이 어느 곳으로 갈까 / 근화가 고성에서 말라가네 / 방황하다가 북쪽 대궐 바라보니 / 갑자기 통곡소리 목에 삼키네.” 문집으로 『규사유고(圭沙遺稿)』가 전한다. 3권 1책으로 권1과 권2에 시(詩) 145수, 소(疏) 1편, 서(書) 10편, 설(說) 1편, 기(記) 3편, 제문(祭文) 1편이 수록되어 있다. 권3은 부록으로 가장(家狀), 묘지명(墓誌銘), 묘갈명(墓碣銘), 묘표(墓表), 전(傳), 찬(贊), 유서발(遺書跋), 서사행후(書事行後), 발(跋) 각 1편이 수록되어 있다. 시 중 「을사시월문늑약통음(乙巳十月聞勒約痛吟)」과 「문민보국영환순국(聞閔輔國泳煥殉國)」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개탄하고 민영환의 뒤를 따라 자기도 순절할 뜻을 적은 것이다. 한편인 소는 「을사의소(乙巳擬疏)」인데 나라에 힘이 없어 외국의 간섭을 받는 것을 분해하면서, 외국의 제도를 모방하지 말고 옛날 제도를 시정해서 써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윤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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