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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춘동

徐春東

1879. 12.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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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서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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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주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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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5) 1879년 12월 10일 한성부(漢城府) 옥동(玉洞, 현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서 태어났다. 1905년 4월, 멕시코로 이민하는 배에 탑승하여 5월 멕시코 유카탄(Yucatán)에 도착하였고 4년간 부채제조노동에 종사하였다. 1909년 5월, 미주 국민회(國民會) 산하 멕시코 메리다지방회(美利多地方會)가 창립되자 회원으로 가입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11년 12월 메리다지방 한인들과 베라크루스주(Veracruz州)와 와하케냐(Oaxaqueña:와악케뇨)로 이주하여 같은 해 12월 오악기나지방회(五岳基那地方會)를 설립하고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16년에는 동 지방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지방회 창립기념식에서 「국민의 의무」라는 제목의 연설을 통해서 망국의 국민으로서 독립운동 참여의 당위성을 역설하였다. 1917년에는 지방회 법무원으로 활동하면서, 대한인국민회 창립 기념식에서 김대선(金大善)과 함께 독립운동을 강조하는 연설을 하였다. 이후 다시 푸엘도(Puerto)지방으로 이주하여 1920년에는 푸엘도지방경찰소 경찰원, 1921~1922년에는 경찰소장으로 활동하였다. 경찰소란 지방회보다 작은 하위 단위의 조직을 말하며, 경찰소장은 회장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1922년 지방경찰소가 예비지방회로 승격됨에 따라 1922~1924년까지 예비지방회 법무원으로서 활동하면서 3·1운동 기념식을 주관하였다. 1928년에는 감사원과 독립운동 자금을 받는 수봉위원(收捧委員)으로 활동하였고, 1930년에는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31년 법무원으로 선출된 이래 1933년까지 법무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31년 12월 5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민족적 공의를 모은다는 취지에서 개최된 미주한인연합회 푸엘도지방회 대표로 참석하였다. 그리고 1932년 11월 27일 푸엘도 지방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결집하여 이봉창의사 추도식을 거행하였으며, 여기서 이봉창 의사의 약력을 낭독하고, 「공동생활을 하자」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다. 1934년부터 1935년까지 멕시코시티지방회(일명 墨京지방회)에서 법무원으로 활동하였는데, 1935년에는 대한인국민회에 대항한다는 목적으로 1930년에 결성된 한인자성단과 다시 북미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합동하는데 기여하였다. 이후 1938년 3월 10일 안창호(安昌浩) 사망 소식을 접한 멕시코시티 지방의 한인들이 추도식을 거행할 때, 안창호의 사략(史略)과 추도사를 하였다. 1942년에는 지방회 의사부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1913년부터 1945년까지 국민의무금, 독립의연금, 3·1운동기념금, 국치기념금 등 약 201원을 독립운동자금으로 후원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박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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