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邊洛奎

邊奎

1893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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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邊洛奎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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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영원(寧遠)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영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대한독립청년단
  • · 대한통군부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4) 평안남도 영원군(寧遠郡) 영원면(寧遠面) 남산리(南山里) 출신이다. 본적은 평안남도 덕천군(德川郡) 풍덕면(豐德面) 임하리(林下里)이다. 자료에 따르면 1933년 당시 41세인 것으로 보아 1893년생으로 추정된다. 이청산(李靑山)·이시명(李詩明)·변학규(邊學奎)·이학규(李學奎)·이시명(李仲明) 등의 이명을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만세운동이 일제의 무력으로 인해 좌절되자 군사력 육성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20년 11월 김봉규(金鳳奎)에 의해 평안남도 영원·덕천·맹산(孟山) 등지를 중심으로 대한독립청년단(大韓獨立靑年團)이 조직되자 가입하여 독립단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21년 6월 대한독립청년단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수십 명의 단원이 붙잡히자, 일제 경찰의 눈을 피해 국경을 넘어 환런현(桓仁縣) 남마권자(南馬圈子)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1923년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지도부 사이의 이념 갈등과 조직의 재정비의 과정에서 의군부(義軍府)로 갈라져 나와 경무국(警務局)에 소속되어 항일무장투쟁을 지속해나갔다. 의군부는 무장투쟁에 중점을 두고 국내진공작전을 펼쳐 국내에 위치한 일제 기관을 파괴하는 등의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세력이 점차 축소되어 통의부(統義府)와 참의부(參議府) 등에 흡수되었는데, 통의부의 남은 세력이 1924년 11월 정의부에 합류되었다. 이때 함께 옮겨 정의부(正義府) 산하의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조선혁명군은 친일파 처단과 국내진입작전을 통한 일제기관의 파괴, 악덕 부호의 응징을 목표로 내세워 활동을 전개하였다. 김광해(金光海)·김병수(金炳洙)와 함께 국내로 잠입하여 평안도 일대를 돌아다니며 독립군 모집과 군자금 확보에 힘썼다. 1931년 12월 23일 평안북도 영변(寧邊) 출신의 김일봉(金一鳳)과 함께 무명(無名)이라는 단체를 조직하였다. 김일봉 등과 영변군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도박 자금을 회수하여 군자금으로 활용하였다. 그 외에 1932년 6월 김광해와 국내에 잠입하여 광산 부호인 최창학(崔昌學)으로부터 군자금을 확보하고자 두 차례나 시도하였다. 이처럼 군자금 확보를 위한 노력 외에 독립단원의 모집에도 열성이었다. 영변군 고성면(古城面) 남산동(南山洞)을 돌아다니며 주민 여러 명을 신규 단원으로 가입시키는데 성공하여 국내 연락망을 신설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 삭주군(朔州郡) 수풍면(水豊面) 연포동(延浦洞)의 유지들에게 군자금을 요청하는 격문을 보내어 150원의 군자금을 확보하였다. 1933년 2월 7일 평안남도 덕천경찰서가 김일봉과 장인준(張仁浚) 등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김일봉이 폭탄을 깨물어 자결하면서 이들의 무장투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김일봉과 관련된 독립단원들의 검거가 대대적으로 진행됨에 따라 같은 해 4월 14일 평안북도 태천(泰川)에서 붙잡혔다. 1933년 5월 13일 신의주지방법원 검사국에 송치되어, 그해 8월 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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