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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창룡

邊昌龍

1892. 6. 1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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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변창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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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희천(熙川)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북도 희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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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마산대
  • · 광복군총영

포상 정보

  • · 애족장(2014)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4) 1892년 6월 15일 평안북도 희천군(熙川郡) 북면(北面) 명문리(明文里)에서 태어났다. 농업에 종사하였고, 1922년 여름 무렵 천마산대(天摩山隊)의 일원으로 최시흥(崔時興)의 부하였던 최오산(崔午山)의 권유로 천마산대에 가입하였다.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평북 의주군(義州郡)에서 최시흥·최지풍(崔志豊)·박응백(朴應伯)·최천주(崔天柱)·심용준(沈龍俊)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된 항일무장투쟁 단체였다. 천마산 일대를 근거지로 하고 있어 천마산대라는 명칭이 붙었으며, 대장 최시흥은 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과 직접 연락을 취하거나, 최지풍 등을 파견하여 무기와 지령을 받기도 했기 때문에 광복군총영의 별동대라는 뜻에서 천마별영(天麻別營) 혹은 철마병영(鐵馬兵營)으로도 불렸다. 적극적인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천마산대는 1920년 3월 선천군(宣川郡) 태산면(台山面)사무소를 습격하여 면장 김병준과 서기 김은기를 처단하였으며, 같은 해 6월 4일 삭주군(朔州郡) 구곡면(九曲面) 신안동(新安洞)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순사 1명을 사살하는 등 일제의 국경치안에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1923년 9월 21일 밤 9시 약 30명의 대원들과 함께 평북 희천군 북면 명문리에서 경찰의 전화선을 끊고 마을 여러 곳에 불을 놓아 일제의 경비망을 교란시킨 후 창참주재소(倉站駐在所)와 면사무소를 기습하는 작전에 참가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원들은 주재소에서 근무하던 도순사(道巡査)를 총살하고, 3명에게 관통상을 입혔다. 이 사건은 ‘희천습격사건(熙川襲擊事件)’ 혹은 ‘창점주재소 습격사건’으로 불리며 국내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되기도 하였다. 사건이 발생하자 추격대를 편성한 평안북도 경찰부에 의해 9월 23일 강계군(江界郡) 입관면(立舘面) 양피동(陽皮洞) 산 속에서 2명의 대원이 총에 맞아 사망하고, 6명이 붙잡혔다. 또한 10월 1일에는 13명이 붙잡혀 총 28명의 관련자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이때 동지들과 함께 붙잡혀 1923년 12월 28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조삼룡(趙三龍) 등 21명과 함께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 방화죄 및 살인 미수죄, 소요죄 등으로 징역 5년을 받았다. 이후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24년 7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고, 1927년 4월 22일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한편 경찰에 체포된 대원들은 재판을 받기 전 약 8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여, 손과 팔을 못 쓰게 되었거나 다리에 장애를 입기도 하였다. 혹은 불덩이나 화저(火箸)로 살을 지져 그 흔적이 완연하게 남은 경우도 있었고, 화침(火針)이나 죽침(竹針)을 맞아 불구자가 된 경우도 있었다. 이밖에 긴박상, 좌상, 타박상 등도 입었다. 이때 몸에 타박상 2곳, 화상 7곳의 흔적이 남는 고문을 당했으며, 이는 재판 과정에서 입회한 의관(醫官)에 의해 확인되었다. 이에 변호사협회에서는 1924년 5월 25일 정기총회 석상에서 대책을 논의하기도 했으며, 언론에는 ‘희천서고문사건’으로 여러 차례 보도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황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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