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신필원

辛必元

1883. 9. 15 ~ 1919. 3. 22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필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북 안동(安東)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안동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3년 9월 15일 경상북도 안동군(安東郡) 임하면(臨河面) 금소동(琴韶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영월(寧越)이며, 이명으로 신원이(辛元伊)를 사용하였다. 1919년 3월 21일 안동군 임하면 금소동과 신덕동(新德洞)에서 벌어진 만세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안동군 임하면 만세운동은 임하면에 사는 임찬일(林贊逸)·노말수(盧末守)·임윤익(林潤益)·박유석(朴有石)·임동숙(林東淑)·손돌이(孫乭伊) 등의 청년들이 주도하였다. 이들 중 고곡동(古谷洞)에 살던 임찬일은 서울에서 만세운동을 직접 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처음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이끌었다. 안동군에서는 이미 3월 17일 예안면(禮安面), 3월 18일에는 안동면에서 대규모 만세시위가 있었고, 도산면(陶山面)에서도 수 십 명이 만세시위는 벌이는 등 여러 곳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 운동의 열기가 고조된 상태였다. 이러한 가운데 임하면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난다는 소식이 주민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전해지고 있었다. 이때, 자신의 마을인 금소동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된다는 소식을 듣고 참여를 결심하게 되었다. 3월 21일 거사 당일 다른 주민들과 약속한 장소로 향하였다. 오후 6시경 마을 앞에는 만세운동 주도 인물들을 포함하여 주민 백여 명이 모였다. 먼저, 주도 인물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주민들과 함께 ‘독립만세’를 연호하였다. 이어 다른 시위대들과 함께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가 있는 신덕동으로 향하였다. 신덕동 경찰관주재소에 이르러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를 포위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들의 외침에 일제 경찰은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총탄을 발포하였다. 이 과정에서 임호일(林浩逸)이 총탄을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고, 이때 일제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중상을 입고 이튿날 사망하였다. 총성에 시위대는 잠시 해산하였지만 다시 주재소로 모였다. 사상자가 발생한 것에 분노한 시위대는 더욱 격렬하게 항거하였다. 주재소 문과 창문 등을 모두 파괴하고 이어서 면사무소로 몰려가 기물과 문부(文簿)를 모두 파괴하며 저항하였다. 다음날부터 일제 경찰의 검거작전으로 많은 참여자들이 검거되어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