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태휴
申泰烋1870. 8. 3 ~ 1931. 6. 6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청송군 현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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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70년 8월 3일 경상북도 청송군(靑松郡) 현서면(縣西面) 무계동(武溪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26일과 27일 양일간 현서면 화목(和睦)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서울·평양 등지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대되었고, 청송군에서는 다른 지역보다는 다소 늦은 3월 25일 진보면(眞寶面) 진안리(眞安里) 장터에서 처음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어서 그 다음날에 화목 장터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일제가 강압으로 나라를 병탄한 것에 항상 비분(悲憤)하고 있었으며 조국의 독립을 열망하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고 이를 기회로 독립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자신의 마을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나기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한 때에 이웃마을 수락동(水洛洞)에 사는 사돈 조현욱(趙炫郁)이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일어날 것을 호소하는 격문을 보내 왔다. 격문을 보고 만세운동의 선두에 설 것을 결심하였다. 조현욱의 격문을 받은 조병국(趙柄國)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실행에 옮기게 되었다. 거사 당일인 3월 26일 아침에 조현욱·조병국과 뜻을 함께 하는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여 화목 장터로 향하였다. 시위대에는 50여 명이 동참하여 만세행진을 시작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이 알려지면서 가는 길에 많은 주민들이 참여하면서 시위대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마침 현서면을 지나 갈 때 면사무소에서는 일제가 마을 구장(區長)과 유지들을 모아놓고 각지에서 일어나는 만세운동을 제지할 의도로 협박과 회유를 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현욱은 오히려 이들을 설득하여 만세운동에 가담하게 하였다. 구장과 유지들까지 만세운동에 동참하게 되면서 군중의 숫자와 사기는 더욱 높아졌다. 오후 1시경 장터에 도착했을 때에는 수백 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하고 있었다. 장터에 도착한 군중들은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조현욱·조병국과 함께 주도하여 시위대는 손에 든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연호하면서 시장 주위를 행진하였다.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현서면 주재소에서는 순사들을 즉시 출동시켰다. 순사들은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고 있던 군중들에게 총칼을 겨누며 강제로 해산시켰고, 이때 조현욱과 함께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럼에도 남은 사람들은 만세운동을 다음날에도 계속 이어갔다. 3월 27일에는 조병국이 주도가 되어 전날보다 많은 군중들이 모여 만세운동을 펼쳤으며, 시위대와 일제 경찰이 대치하는 등 더욱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제 경찰이 총격을 가하면서 4명이 부상을 입었고 조병국과 주도 인물 4명도 그 자리에서 붙잡혔다. 또한 일본 경찰은 시위에 사용되었던 태극기 17개를 압수하고, 백여 개를 파기하였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4월 9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5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 취소 이후 징역 2년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에 다시 상고하였지만, 그 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면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홍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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