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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태하

申泰廈

185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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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태하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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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2)

관련 사건

  • · 1919년 이원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2) 정확한 생몰연도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되지 않는다. 판결문 자료에 따르면, 185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당시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남면(南面) 상차호리(上遮湖里)에 거주하면서 여인숙을 운영하였으며, 3월 11일 이원군 남면 차호시장(遮湖市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함경남도 이원군에서는 1919년 3월 10일 서면(西面) 이원 읍내에서 처음으로 만세시위가 발생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남면의 김탁(金鐸)·전원숙(全元淑)·변광국(邊廣國) 등은 3월 11일을 만세일로 계획하고, 주민들에게 이를 알렸다. 3월 11일 오후 1시경 남면 차호시장에 용항리(龍項里)·하차호리(下遮湖里)·상차호리·포항리(浦項里) 등 각 마을 주민들이 모여들었다. 이 자리에서 김탁·전원숙·장병섭(張炳涉)·강응삼(姜應三)·신병칠(辛秉七)·신종규(辛宗圭) 등과 함께 ‘조선독립국’ 깃발을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1,000여 명의 시위 군중들과 함께 시장을 출발하여 차호헌병주재소(遮湖憲兵駐在所)·면사무소·공립보통학교·기독교회당 등으로 이동하면서 만세를 불렀다. 각 장소에서 사람들이 잠시 멈추면 “모든 군중들은 조선 독립을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라는 내용으로 김탁·신종규·최용주(崔龍周)·최관호(崔觀鎬) 등이 연설하였다. 이후 시위 군중들은 차호공립보통학교로 가서 선언서를 낭독한 후, 수십 차례 만세를 외치고 오후 4시경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의 검거 과정에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6일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한 결과, 그 해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아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주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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