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화
申昌和1886. 1. 15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6)
관련 사건
- · 1919년 경성군 용성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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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6) 1886년 1월 15일 함경북도 경성군(鏡城郡) 용성면(龍城面) 수성동(輸城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15일 경성군 용성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서울·평양을 비롯해서 북부지역의 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 후 만세시위는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함경북도에서는 천도교와 개신교 인사를 중심으로 경성군을 비롯해서 북부지역에서 전개된 만세시위 소식이 전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독립선언서가 유포되었다. 3월 9일 오후 2시 천도교 경성대교구실에서 대교구장 김두학(金斗學)이 주재한 회합에 박용한(朴庸漢)·남정하(南正夏)·이종선(李鍾璇)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김두학은 교주 손병희의 뜻을 받들어서 경성군에서도 독립을 선언하고 만세시위를 일으키자고 제안하였다. 구체적으로는 3월 15일 교구실에 모여서 만세시위를 일으키자면서 천도교도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자고 하였다. 이에 남정하와 김용남과 함께 경성면 일대에 거주하는 천도교도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아울러 밤에는 박용한·남정하·김용남·남기석 등이 중심이 되어서 박영하의 집에서 독립선언서 1,000여 장을 인쇄하였으며,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2기도 제작하였다. 일제 군경은 용성면 만세시위 계획을 탐지하고 헌병을 중심으로 경계를 강화하였으며, 3월 14일 밤에는 김두학을 비롯해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는 주요 인사들을 연행하는 한편 사전에 제작한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압수하였다.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3월 15일 만세시위는 진행되었다. 이종선·권병한(權秉煥)·고세관(高世寬) 등은 수백 명의 천도교도와 함께 교구실에 모였으며, 정오 무렵 시위대는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행진하기 시작했다. 이에 헌병대가 출동해서 시위대를 강압적으로 해산시키고, 그 과정에서 시위에 참여한 100여 명을 연행하였다. 일제의 계속된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녁 8시에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도 하였다. 이후 일제 군경에 의해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4월 17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는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를 기각하였다. 이에 한국인으로서 정의·인도에 의해서 행동한 것은 범죄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상고하였으나. 그 해 6월 14일 고등법원은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확정하였다. 이에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6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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