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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원

申濟元

미상 ~ 191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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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제원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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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3.1운동

포상 정보

  • · 애국장(2000)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재령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00) 출신지와 출생일자는 자료의 한계로 확인되지 않는다. 황해도 재령군(載寧郡)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총상을 입고 사망하였다. 김병조(金秉祚)의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 상편(上篇)에는 날짜가 적혀있지 않은 채, 황해도 “재령군 북율면(北栗面) 내종리(內宗里)에 독립운동”이 크게 일어나서 “6천여 인이 선언서를 발포하고 만세”를 불렀으며, 일제 군경의 발포로 최재유(崔在裕)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신제원(申濟元)은 중상”을 당했다가 “뒤에 제중원(濟衆院)”에서 죽음을 당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한국독립운동사략』 상편과 당시 일제 관헌 기록을 맞춰본다면, 3월 10일 재령군 북률면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중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1919년 3월 초순부터 황해도 재령군에서는 남률면(南栗面)과 북률면(北栗面)·재령면(載寧面)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추진되었다. 북률면에서는 3월 5일을 전후로 개신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만세시위를 조직하였다. 3월 5·6일 경 노동섭(魯東燮)과 남지리(南芝里)에 사는 교회 조사(助事) 김병식(金秉植)은 독립선언서 400장을 등사하였다. 이후 김상준(金賞俊) 등에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도록 했으며, 김병식과 동신흥리(東新興里) 교회 집사 김위식(金緯湜)은 교사 김복현(金福鉉)과 김병선(金秉善)에게 태극기 제작을 의뢰하여 만세시위에 사용할 태극기 150매를 제작하였다. 3월 9일 최희준(崔凞俊)의 독립선언 낭독을 들은 조춘원(趙春元)은 본인 집에서 송봉국(宋鳳國)·조준원(趙俊元)·신봉조(申鳳祚)와 함께 태극기 20장을 제작한 후 다음날 송봉국을 통해서 시위 현장에 태극기를 배포하게 하였다. 한편 최희준은 개신교 목사 윤문옥(尹文玉)에게 만세시위 주도 및 신자들에게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3월 9일 일요 예배에서 윤문옥은 신자들을 대상으로 3월 10일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였다. 3월 10일 오전 9시 북률면 내종리 상거동(上巨洞)의 숭의학교(崇義學校) 앞마당에서 시작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윤문옥·조춘원(趙春元)·노동섭·김병선·황경용(黃景容) 등은 1,0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었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태극기를 흔들면서 독립만세를 외치고 독립가를 불렀다. 시위대가 내종리 시장으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시위대의 숫자는 4,500여 명으로 불어났다. 내종리에 주둔하는 일본 헌병주재소의 병력으로는 시위대를 진압할 수 없게 되자, 재령헌병분대는 추가로 10명의 보병을 내종리로 파견하였다. 일제 군경의 시위 진압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일제 군경을 제압하고 총기 1정을 탈취하면서 헌병분대로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자 일제 군경은 시위대를 향해서 일제 사격을 가하였으며, 일제 군경의 총탄에 심각한 부상을 입고 제중원에 입원하였지만 총격의 후유증으로 결국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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