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균
申善均1892. 10. 5 ~ 1949. 6. 2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4월 평산군 서봉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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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92년 10월 5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서봉면(西峰面) 범안리(泛雁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평산군 세곡면(細谷面) 누천리(漏川里)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월 1일 만세시위가 시작되기에 앞서 천도교도 이동락(李東洛)은 고향인 평산군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주도할 것을 제안받았다. 하지만, 3월 2일 평산군에 도착한 이동락은 일제 헌병에 의해서 거주 제한을 당했다. 이에 이동락은 금천군(金川郡)에 사는 천도교인 강창선(姜昌善)과 연락을 취해서 평산군 만세시위를 은밀히 추진하였다. 3월 7일 평산군의 천도교인들은 평산읍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고, 3월 8일 평산읍 장터에서도 만세시위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이후 일제 헌병대는 평산군에서 만세시위가 재개되거나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평산읍 만세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함과 동시에 평산군 일대의 감시를 강화하였다. 3월 말을 전후로 만세시위가 전국적으로 절정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평산군에서도 만세시위가 재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4월 2일 세곡면 누천리 장날을 맞이하여 시작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일제 관헌은 세곡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에 태극기가 게양되는 사건을 계기로 세곡면 일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최헌영(崔憲永)·이대성(李大成)·이원영(李元永)·민홍식(閔弘植)·신상균(申祥均)·신세균(申世均) 등과 함께 4월 2일 누천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1919년 4월 2일 오후 3시 무렵 누천 장터에서 7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헌병분견소로 행진하였다. 헌병분견소 입구에서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진압하고자 했으며, 이에 격분한 시위대는 분견소로 진입하였다. 시위대가 분견소 유리창을 부수고 분견소장의 얼굴을 구타하자, 일제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서 일제 사격을 하였다. 그 결과로 현장에서 시위대 3명이 즉사하였고, 일제 헌병의 총격으로 부상을 입고 은신하였다. 이후 일제 관헌의 눈을 피해서 1920년 만주로 피신하는 도중에 일제 관헌에 의해서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21년 3월 31일 해주지방법원 서흥지청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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