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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춘경

權春京

188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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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권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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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沃川)의병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북도 옥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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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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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충청북도 옥천군(沃川郡) 안읍면(安邑面) 창리(蒼里)에서 태어났으며, 상업에 종사하였다. 1908년 당시 23세였기 때문에 1886년에 출생한 것으로 보인다. 1907년 10월부터 1908년 2월 무렵까지 소규모 의병 세력인 홍사과(洪司果) 의병부대의 부대원으로 활동하였다. 의병 활동에 참여한 시기는 1907년 10월 이후로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시기였다. 정미의병은 1907년 6월 헤이그특사 사건을 빌미로 한 일제의 고종 강제 퇴위가 배경이 되었다. 이어서 일제는 내정간섭을 본격화하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고, 1907년 8월 1일에는 대한제국 군대해산까지 강행하였다. 이후 강제해산된 군인까지 의병에 합류하여 일제에 저항하였다. 당시 거주하던 충북 일대에서는 이강년(李康䄵) 의병부대와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 등 소규모 의병부대를 연합한 의병 세력이 활동하고 있었다. 또한 각 지역의 의병부대가 연합하여 13도 연합 의병을 발족시키는 등 의병부대의 연합작전이 대세를 이루었기 때문에 충북 일대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따라서, 이 일대에서는 점차 소규모 의병부대가 형성되어 유격전을 벌이면서 대규모 의병부대에 참여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처럼 의병 활동이 확산하는 가운데 1907년 10월 5일 충북 문의군(文義郡) 광대암(廣大岩)에서 홍사과가 이끄는 의병부대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홍사과의 행적과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진 점이 없을 정도로 소규모 의병부대였다. 충북 일대를 기반으로 하면서 소규모 의병부대의 형태로 유격전을 전개해 나갔다. 유격전을 벌이기 위해 이들은 계속해서 근거지를 옮기는 작전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의병 가담 이후로 1908년 2월 무렵까지 4개월여 동안 홍사과의 휘하에서 부대원 30여 명과 함께 충북은 물론이고, 경상도와 전라도 일대까지 진출하였다. 이 과정에서 부대원들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일제 헌병대와 교전을 벌이는 한편, 병참 창고를 습격하기도 하였다. 1908년 8월 무렵 일본 군경의 의병 진압 과정에서 체포된 것으로 추정된다. 8월 22일에 구류되어 8월 24일에 이른바 반역의 죄명으로 접수되었고, 24일에 이른바 폭도의 죄명으로 기소되어 공주(公州)의 연산헌병분견소(連山憲兵分遣所)에 송치되었다. 1908년 9월 4일 정식 기소되어 9월 23일 공주지방재판소에서 징역 7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2년여의 옥고를 겪다가 1910년 칙령 325호 대사령(大赦令)에 따라 형을 감면받고 출옥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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