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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여직

宋汝直

1889. 10. 28 ~ 1947.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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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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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천(舒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서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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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남도 서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89년 10월 28일 충청남도 서천군(舒川郡) 마산면(馬山面) 신장리(新場里)에서 태어났다. 지역에서 기독교인으로 활동하며 1919년 3월 29일 서천군 마산면 신장리 장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천군 마산면에서는 한영학교(韓英學校) 출신의 송기면(宋箕勉)을 중심으로 기독교계 인물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중순경 친동생인 송기면으로부터 전국적인 만세운동의 상황 전달과 만세운동 계획에 대한 제안을 받고 이근호(李根浩)·임학규(林學圭)·유성열(劉性烈)·이동홍(李東洪)·노형래(盧亨來)·하중호(河重鎬)·유일동(劉一童) 등과 함께 그 취지에 찬동하여 뜻을 같이 하였다. 이들과 협의를 통해 만세운동의 거사일을 신장리 장터의 장날인 3월 29일로 결정하고, 구체적인 만세시위 준비에 착수하여 주민들에게 배포할 태극기를 제작과 연설의 내용을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29일 오전 11시 경 동생 송기면을 비롯한 만세운동의 동지들과 함께 신장리 장터로 나갔다. 송기면과 유성렬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고, 다른 동지들이 주민들에게 태극기의 배포를 시작하자, 장터에 나온 주민들에게 “우리 조선이 자주 독립하여 자유를 향유하고 장래의 안락을 도모한다면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라고 준비한 내용을 연설하였다. 만세운동에 공감한 주민들이 속속 만세시위에 결합하자 송기면 등과 시위대열을 조직하여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대한독립만세’를 불렀다. ‘대한독립만세’의 외침이 울려 퍼지자, 이것을 듣고 출동한 순사보 이한규(李翰圭) 등 일제 경찰에 만세시위의 주도자로 지목되어 송기면·유성렬과 함께 붙잡혀 순사주재소로 연행되었다. 해산하지 않고 남아있던 만세시위대는 이근호와 나상준(羅相俊)이 이끌었다. 이들은 시위대를 지휘하여 순사주재소로 쫓아가서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하는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의 즉시 해산을 명령하면서 이근호와 나상준까지 연행하였다. 이러한 일제 경찰의 폭압은 시위대를 크게 자극하였다. 분노한 주민들이 새롭게 대거 만세시위에 참여하면서 시위대의 규모는 2,000여 명에 이르렀다. 대규모 시위대는 그 위세를 배경으로 더욱 강력하게 연행자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포자를 석방하지 않고 고압적인 자세로 만세시위의 해산을 명령하는 일제 경찰의 태도에 더욱 분노한 이동홍 등은 시위대를 향해 “체포 구금된 인사들을 탈출시키기 위하여 출장소를 공격하자”, “주재소에 갇혀 있는 동포를 그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고 외치며 주재소의 습격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순사주재소의 창문과 유리창을 부수고 책상과 의자 등 기물을 파손하고, 주재소 쳐들어가 일제 경찰들을 구타하면서 체포자 전원을 구출하였다. 송기면·유성열 등과 함께 구출되어 다시 시위대를 이끌었다. 만세시위를 더욱 확대시킬 생각으로 시위대를 이끌고 한산(韓山)을 거쳐 서천 방향으로 행진하였다. 마산면과 한산면의 경계를 통과할 즈음 서천군수 권익채(權益采)가 직접 말을 타고 와서 “일제 헌병이 매복하여 있으니 해산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이에 주민들의 대규모 희생을 우려하여 만세시위를 자진 해산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에 의해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19일 공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징역 1년 6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도 동일한 판결을 받았다. 다시 상고했으나, 그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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