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탁
宋世卓1884. 11. 30 ~ 1939. 1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7)
관련 사건
- · 1919년 경상남도 김해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7) 1884년 11월 30일 경상남도 김해군(金海郡) 진례면(進禮面) 담안리(談安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2일 김해군 김해면 읍내시장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김해읍 출신 세브란스의전 학생 배동석(裵東奭)은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고향으로 내려와 임학찬(任學讚)·배덕수(裵德秀)·송세희(宋世憘) 등을 만나 거사준비를 논의하였다. 이들은 3월 30일 밤 김해면(金海面) 읍내의 중앙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만세시위를 벌였고, 일본군 헌병에 의해 일부 주도 인물들이 체포되었다. 이 소식을 접한 허병(許炳)은 당시 검거를 면한 송상진(宋相振)과 함께 4월 2일 김해면 읍내시장(邑內市場)의 장날을 기하여 재차 거사하기로 결의하였다. 3월 31일 허병은 자택에서 나무판에 태극기를 조각하고, 광목으로 태극기 수십 장을 찍어 제작하였다. 4월 1일 밤 주도 인물들은 격문을 붙이며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4월 2일 만세시위에 참가하기로 뜻을 세우고 김해면의 읍내시장으로 주도 인물들과 함께 모였다. 장날 지역민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오후 3시경 최계우(崔桂㝢)에게서 태극기를 나누어 받아, 김석암(金石岩)·최덕관(崔德瓘)·조병중(曺秉重)·송상진 등과 함께 군중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독립만세’를 크게 연호하며 시장을 누볐다. 오후 4시경 6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출동한 일본군 헌병대과 충돌하였다. 시위군중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일제 군경은 일제 재향군인과 상인까지 동원하여 폭력적으로 시위 군중을 진압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머리에 자상을 입고 붙잡혔다. 이후 재판에 회부되어, 1919년 5월 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검사의 항소로 같은 해 5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원판결은 취소되고 징역 8월의 실형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