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송성호

宋聲浩

1856 ~ 1919. 4. 11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성호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기 수원(水原)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수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국장(2015)

관련 사건

  • · 1919년 경기도 수원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5) 경기도 수원군(水原郡) 우정면(雨汀面) 화수리(花樹里)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56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1919년 4월 3일 수원군 우정면과 장안면에서 진행된 만세운동에 참여한 후 탄압 과정에서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을 비롯해 주요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만세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경기도 수원군 일대에서도 3월 중순경부터 만세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해 4월 중순까지 송산면(松山面)·성호면(城湖面)·일형면(日荊面)·반월면(半月面)·의왕면(儀旺面)·향남면(鄕南面)·장안면(長安面)·우정면(雨汀面) 등 수원군내 전역으로 파급되었다. 4월 3일 오후 3시 우정면 화수리(花樹里)에 우정면 구곡리(球谷里)·한각리(閑角里)·이화리(梨花里)·장안면의 석포리(石浦里)·수촌리(水村里) 등지의 주민 약 300명이 모였다. 군중은 장안면사무소로 몰려가 장안면사무소를 포위하고 함성을 지르며 돌을 던졌다. 군중 일부는 건물을 부수고 서류 등을 훼손하였다. 또 장안면장을 앞세우고 양봉산(兩峰山)으로 향하였다. 산에 오른 군중은 만세를 외친 후, 오후 5시경 우정면사무소와 화수경찰관주재소(花樹警察官駐在所)로 행진하기 시작하였다. 장안면과 우정면의 주민들은 행진하는 만세행렬에 합세하였다. 군중은 우정면사무소를 둘러싸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군중 중 20여 명 가량이 우정면장 집으로 갔으나 면장을 찾지 못하였다. 오후 6시 약 2,500명으로 증가한 군중은 세 갈래로 갈라져 화수경찰관주재소를 향해 행진하였다. 화수경찰관주재소에 도착하자 군중은 주재소를 포위하고 앞뒤에서 만세를 외쳤다. 화수경찰관주재소 소속 경찰들이 계속 발포하자 군중은 이들을 구타하였다. 일본인 순사 1명이 사망하고 한국인 순사보 2명이 행방불명되었다. 순사보 1명이 도망쳐 발안경찰관주재소에 가서 화수리의 만세운동 상황에 대해 전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군중은 발안경찰관주재소로 몰려가 경찰관주재소에 방화하였다. 해가 지자 군중은 일단 해산하고 밤에 다시 장안면 사랑리(沙浪里) 남산(南山)에 모이기로 하였다. 만세운동은 4월 5일로 이어져 장안면 장안리 등지의 주민들이 산상에 올라 화톳불을 피우고 만세를 불렀다. 일제는 수원 일대의 만세운동이 고조화되자 ‘특별검거반’을 조직하였다. 특별검거반은 4월 2일부터 4월 14일까지 64개 마을을 수색하였다. 이들은 19명을 사상하였으며 주로 야간을 이용하여 800여 명을 체포하였다. 17개 지역에서는 방화하여 280여 채의 가옥이 소실되었다. 4월 15일에는 향남면 제암리에서 발안경찰관주재소의 경찰과 보병79연대 소속의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 중위 이하 보병이 공조하여 마을사람들을 기독교회당에 집합시켜 놓고 사격을 가해 30~40여 명이 사망하였다. 또한 가옥 28채 이상이 소실되었다. 당시 우정면과 장안면 일대의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이러한 일제 군경의 탄압과정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