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헌
宋成憲1864. 11. 7 ~ 1919. 3. 2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국장(2014)
관련 사건
- · 1919년 경기도 광주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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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4) 1864년 11월 7일 경기도 광주군(廣州郡) 경안면(慶安面) 장지리(墻枝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진행된 광주군 경안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 등 전국의 주요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난 후 3월 19일 경기도 광주군 경안면에 만세운동 시도가 있었으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경기도 광주군의 만세운동은 3월 21일부터 본격화되었다. 3월 21일부터 3월 25일까지 중대면(中垈面) 송파리(松坡里)에서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이 인쇄되어 면내에 배포되었다. 3월 26일부터는 광주군내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동부면(東部面) 풍산리(豐山里)와 교산리(校山里) 일대의 주민들이 산상에 올라 화톳불이 올리고 만세를 외쳤다. 구천면(九川面) 상일리(上一里), 대왕면(大旺面) 수서리(水西里), 중대면 송파리,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등지에서 각기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3월 27일에는 낙생면(樂生面)·서부면(西部面)·구천면(九川面)·중부면의 주민들이 일어나 면사무소나 헌병주재소 등 주요 관서로 몰려가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각 면에서 일어났던 군중은 군청 앞으로 집결하기 시작하였다. 3월 28일 오전 9시경 오포면사무소(五浦面事務所) 앞에 약 600명의 군중이 모였다. 유면영(柳冕永) 등이 군중에게 만세를 부를 것을 호소하며 “광주군청으로 밀고 들어가자! 헌병 등이 발포하더라도 물러나지 말고 일심동체가 되어 저놈들을 체포하자”라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에 동참하였다. 오전 11시경 약 1,000명으로 증가한 군중이 오포면사무소 앞에서 만세를 연호하였다. 오후 2시경 군중 1,500여 명이 광주군청 앞에 모였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광주군청이 있었던 경안리(京安里) 일대를 행진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들은 군청과 우편국을 향을 돌을 던지며 일제 식민기관에 항거하였다. 군수와 군청 직원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하여 함께 만세를 외칠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다. 광주헌병분견소의 헌병은 보병79연대 1개 소대의 지원과 재향군인을 동원해 군중을 제지하고자 하였으나 군중이 이에 불응하였다. 군중은 군청 내로 달려 들어가 헌병과 격투를 하였다. 이에 일제 헌병 등이 발포하여 한국인 6명이 사망하고 10여 명이 부상하였다. 이때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후에 군중은 일단 해산하였으나 만세운동은 이튿날에도 계속되었다. 3월 29일 경안면 경안리 일대에서는 군중이 각기 200~300여 명으로 무리를 이루어 세 곳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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