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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용

宋聖用

1883. 4. 20 ~ 1934.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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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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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부천(富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기도 부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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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1919년 경기도 부천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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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3년 4월 20일 경기도 부천군(富川郡) 남동면(南洞面) 서창리(西昌里, 현 인천광역시 남동구 서창동 일대)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3월 31일 부천군 남동면에서 만세시위를 계획하다 발각되었다. 1919년 3월 1일 독립선언식 이후 서울을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자 3월 24일경부터 4월 초까지 부천에서도 계양면(桂陽面)·계남면(桂南面)·문학면(文鶴面)·용유면(龍游面)·대부면(大阜面)·덕적면(德積面)·영흥면(靈興面) 등지에서 10여 차례에 걸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각지의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아 3월 31일 남동면 서창리 송윤중(宋潤中)의 집에서 오창조(吳昌祖)에게 부탁하여 “4월 1일 남동면 질천시장(蛭川市場)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치자”는 내용의 격문을 작성하도록 하였다. 이날 김춘근(金春根)·윤영택(尹永澤)·박중일(朴重一)과 협의해 서창리와 다른 8개 마을의 구장 앞으로 격문을 배포하게 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을 일으키기 전에 붙잡혀 미수에 그쳤다. 1919년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9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다. 다시 상고하였으나, 그 해 7월 1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송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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