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석봉
宋錫奉1897. 10. 13 ~ 1972. 11. 30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8)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북도 음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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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8) 1897년 10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陰城郡) 감곡면(甘谷面) 문촌리(文村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3일과 4일의 음성군 감곡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음성군 감곡면에서는 4월 1일부터 5일까지 집중적으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4월 1일의 만세 시위는 주천리(舟川里)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는데, 이것이 감곡면 최초의 만세 시위였다. 이날 주민들은 주천리에서 ‘조선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일제의 경찰주재소로 몰려가 격렬한 만세 시위를 전개한 후 오후 2시경 해산하였다. 다음날 2일에도 약 100여 명의 주민들이 주천리에 집결하여 시위 대열을 형성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며 행진하는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주천리를 중심으로 전개된 만세시위를 뒤이어 문촌리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문촌리의 만세 시위는 4월 3일부터 4일까지 2일 간 전개되었다. 평소 향리에서 시국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있던 홍종훈(洪鍾勳)과 협의하여 독립을 위해 향리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4월 3일 밤 홍종훈과 함께 문촌리의 주민 수십 명을 규합하여 마을 인근의 응봉산(鷹鳳山)으로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일제히 ‘대한독립만세’를 큰 목소리로 연창하는 횃불 만세 시위를 한동안 전개한 후 해산하였다. 다음날인 4월 4일에는 마을 다른 주민들과 함께 면사무소의 부역 동원령에 따라 감곡면사무소의 양묘장으로 출역하였다. 양묘장에서 작업하던 중, 면서기 이상석(李相錫)이 작업 감독을 위해 양묘장으로 나오자, 그에게 “당신과 같은 면의 관리가 한국 독립 만세를 소리 높이 외치면, 본 면의 주민들도 모두 따라 외칠 것이니 작업 나온 주민들과 함께 한국 독립 만세를 고창하자”고 선동하고, 압박하여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1919년 5월 28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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