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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규

宋錫圭

1895. 12. 25 ~ 1980.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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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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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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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5)

관련 사건

  • · 1919년 충청남도 청양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5) 1895년 12월 25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운곡면(雲谷面) 모곡리(茅谷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으며, 4월 청양군 운곡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운곡면에서는 1919년 4월 3일부터 만세운동에 대한 시도가 있었다. 이는 일제 경찰에 사전에 발각되어 좌절되었으나, 청양 내에서 시도된 최초의 만세운동 움직임이었다. 이후 운곡면의 만세운동은 4월 6일과 8일의 2차례에 걸쳐 야간에 횃불만세운동으로 전개되었는데, 제2차 횃불만세시위인 8일의 시위는 인근의 비봉면(飛鳳面) 주민들과 함께 한 연합시위였다. 4월 6일 밤 운곡면의 면소재지인 신대리(新垈里)를 중심으로 모곡리·영양리(永陽里)·효제리(孝悌里)·후덕리(厚德里)·위라리(位羅里)의 주민 600여 명은 마을 주변의 산 위로 올라가 횃불만세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주도 인물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 시위에 송석지(宋錫智) 등 모곡리 주민들과 함께 마을 인근의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전개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운곡면의 횃불만세시위에 영향 받아 2차로 전개된 8일 밤의 만세시위에는 이웃한 비봉면의 주민들이 적극 호응하여 오후 10시 경부터 운곡면과 비봉면의 주민 600여 명이 연합하여 횃불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마을 주민들과 함께 주변 산 위에 올라가 횃불을 밝히고 ‘조선독립만세’를 연창하는 만세시위를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2일 간 야간에 전개된 횃불만세시위에 일제 헌병들은 산 위로 직접 올라오지 않고, 만세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것으로 대응하였다. 일제 헌병들은 야간이었던 시위 당시에는 시위대를 해산시키는 것에 주력하고, 이후 날이 밝은 후 각 마을에 헌병을 파견하여 횃불만세시위 참여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일로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1919년 4월 21일 즉결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의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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