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기
宋秉箕1891. 4. 30 ~ 1930. 5. 18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관련 사건
- · 1919년 강원도 횡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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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2) 1891년 4월 30일 강원도 횡성군(橫城郡) 서원면(書院面) 분일리(分一里, 현재 원주시 호저면 매호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12일에 자신이 사는 서원면 분일리(分一里)에서 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횡성군에서 만세시위가 처음 일어난 것은 3월 27일이었지만, 3월 초부터 움직임이 있었다. 3월 16일 횡성공립보통학교(橫城公立普通學校, 현 횡성초등학교) 학생들이 고종의 사망에 조의 표시로 삼베 천을 달고 학교에 나왔으며, 만세운동에 대한 일제 총독의 유시문(諭示文)을 찢어 버리는 일도 있었다. 3월 27일 천도교인들이 주도가 되어 횡성읍 장터에서 첫 만세시위가 전개되었으며, 4월 1일과 2일 횡성읍에서 연이어 대규모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4월 2일 이후 일제의 만세운동 참여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가 실시되면서 많은 주민들이 고초를 겪었다. 이후 상점을 철시하거나 태극기를 걸어두는 것으로 저항하였고, 군수를 규탄하고 만세운동으로 체포된 사람들을 석방하라는 선전문을 붙이는 등 꾸준히 항일운동을 이어갔다. 그리고 4월 12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주도한 분일리에서의 집단적인 항일만세시위가 일어나게 된다. 주도 인물들과 같이 거사를 계획한 것은 4월 12일, 운동 당일이었다. 이때 회의를 개최하고자 같은 마을에 사는 사촌 형 송병창(宋秉昌)의 집에서 성태현(成泰鉉)·박민희(朴民喜)·이정헌(李正憲) 등을 만났다. 그 자리에서 만세운동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고, 성태현 등과 같이 참여 인원 모두가 서원면 분일리에서도 4월 12일 밤에 만세시위를 펼치기로 의견을 모았다. 이를 위해 향산(香山)·수동(水洞)·상촌(上村)·조항리(鳥項里) 마을을 돌며 뜻을 함께할 주민들을 규합하였다. 이 날 밤 9시경, 성태현·박민희·이정헌 등 주도인물들과 함께 마을 주민 50여 명을 이끌고 향산리와 수동리 사이에 있는 뒷산에 올랐다. 그 자리에서 주민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소리 높여 외쳤다. 군중들과 함께 외친 만세 소리가 동리에 울려 퍼지면서 마을에 있던 김옥봉(金玉鳳)·유정근(柳定根)·이두연(李斗淵)·이종우(李鍾禹) 등이 호응하여 밤늦게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왔고 다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산에서 만세시위를 마친 다른 사람들과 마을을 돌면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만세 소리는 밤늦게까지 이어졌으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시위를 펼친 후 자진 귀가하였다. 이후 만세운동 주도 인물로 지목되어 붙잡혔다. 1919년 5월 1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7월 2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후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던 중, 1920년 4월 28일 영친왕의 혼인으로 내려진 ‘은사령’으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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