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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호

宋文鎬

1887. 9. 6 ~ 1919.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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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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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함안(咸安)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함안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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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국장(1991)

관련 사건

  • · 1919년 경상남도 함안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1991) 1887년 9월 6일 경상남도 함안군(咸安郡) 군북면(郡北面) 사내리(沙內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만세운동 이전에도 친동생 송길호(宋吉鎬)와 함께 지역 내에서 반일적인 언행을 하여 이미 일제 경찰의 주목 대상 인물이었다. 3월 20일 경상남도 함안군 군복면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가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군북면 만세시위는 고종 장례에 참여하고 돌아온 조한휘(趙漢輝)·한관열(韓灌烈) 등 지역 인사들에 의해 서울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진 직후부터 기획되었다. 3월 6일경 군북면 사촌리(舍村里) 조용대(趙鏞大)의 사랑채에서 20여 명의 지역 유지들이 모여 거사 계획을 논의하였다. 여기서는 3월 19일 함안 읍내 만세 시위 참여와, 20일 군북면 장날 만세 시위가 결정되었다. 구체적 준비를 위해 3월 10일 10여 명의 사람들이 서산서당(西山書堂)에 모여 모임을 가졌다. 고종 국장에 다녀온 인사들이 비밀리에 지참하고 돌아온 독립선언서의 등사, 태극기 제작 등 시위에 필요한 물품 제작과 지역별 인원 동원, 일제 경찰과 밀정에 대한 감시 등 역할이 분담되었다. 이후 주도자들은 만세시위 준비를 위해 서산서당과 원효암(元曉庵) 의상대(儀湘臺) 등에서 지속적으로 모여 논의하였다. 일제 경찰과 밀정의 눈을 피하기 위해 서산서당에 모일 때는 한문 강학으로 위장했고, 원효암 의상대에서 논의할 때는 나무꾼으로 가장하였다. 3월 20일 군북면의 만세시위는 오전 9시부터 동촌리(東村里) 신창학교(新昌學校) 교정에서 학생 50여 명과 함께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시위는 오후 1시경 군북면 장터에서 보다 확대된 형태로 재개되었다. 장터에 나온 군중들이 합세하면서 시위대 규모는 5천 명까지 불어났다. 이때 친동생 송길호와 함께 군중의 선두에 서서 시위대를 이끌었다. 오후 5시경 군북면사무소와 경찰주재소를 포위하고 공격할 때도 선두에서 투석전을 벌이면서 군중을 독려하였다. 당시 군북면에 파견되어 있던 일본군 중포병대대를 필두로 한 일제 군경은 폭력적 진압을 통해 시위대를 해산하려고 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실탄 사격을 개시하였다. 이때 일제의 총칼을 맞아 다른 20여 명의 사람들과 함께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동생인 송길호도 복부와 다리에 관통상을 입는 중상을 당하였다. 군북면 만세시위와 관련하여 일제측에서 최종적으로 집계한 인명 피해로도 한국인 사망 21명·부상 18명으로, 만세운동 지역 사례 중 손꼽히는 참극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196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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