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용창
權用昌1886. 4. 8 ~ 1950. 12. 17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후기의병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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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1990) 1886년 4월 8일에 충청북도 제천군(堤川郡) 한수면(寒水面) 덕곡리(德谷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경집(敬執)이다. 그 외 가족관계나 성장 배경은 알려져 있지 않다. 이강년(李康秊) 의병부대에서 좌종사(坐從事)로 활동하였다. 이강년은 이미 1896년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킨 바 있다. 단발령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던 안동관찰사 김석중(金奭中) 등 3명을 처단하면서 기세를 높여 제천의 호좌의진에 합류하였다. 당시 호좌의진을 이끌던 유인석(柳麟錫) 휘하에서 유격장으로 활동하던 이강년은 자신이 거주하던 제천은 물론 충청·경북 북부 일대에서 명성을 떨쳤다. 1907년 이강년은 일제가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한일 신협약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하자 때를 기다리며 의병 투쟁을 계획하였다. 그러던 중 을미의병 당시 유인석 의병부대에서 함께 활동하던 윤기영(尹起榮)이 해산된 원주진위대로부터 무기를 얻어 의병을 모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종사 11명과 함께 원주로 달려갔다. 원주에서 의병부대와 함께 제천으로 내려온 이강년은 각지에 격문을 보내 의병을 모았다. 민긍호(閔肯鎬) 의병부대를 비롯한 여러 부대가 합류할 때 참여하였다. 이들은 제천 천남(泉南) 전투에서 일본군 1개 소대와 교전하여 일본군 5명을 사살하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히는 등 승리를 거두고 주천으로 이동하였다. 주천으로 이동한 이강년은 김상태(金尙台)를 비롯한 40여 개의 의병부대의 의병장들에 의해 도창의대장(都倡義大將)에 추대되었다. 이어서 지휘체계를 통일하기 위해 의병부대를 재정비하였는데 도총독장에 이만원(李萬源)을, 중군장에 김상태를 임명하였다. 이 때 좌종사부 소속 좌종사로 활동하였다. 이후 이강년 의병부대는 단양·영춘·영월·청풍을 비롯하여 경북 북부 지역까지 활동 지역을 넓혀 유격전을 전개하였다. 이 때 단양·청풍·가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으며 1908년 이강년이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체포될 때까지 함께 종군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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