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삼
申鍾三미상 ~ 1936. 10
관련 단체
- · 조선혁명군
포상 정보
- · 애국장(2009)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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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09) 자료의 한계로 출생일자와 출신지, 만주로 이주한 시기 등은 확인할 수 없다. 조선혁명군(朝鮮革命軍)에 가입하여 주로 지안현(集安縣)과 콴뎬현(寬甸縣)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조선혁명군은 1929년 4월 정의부(正義府)·신민부(新民府)·참의부(參議府)가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가 결성됨에 따라 3부의 병력을 통합하여 조직된 군대였다. 조직 초기 조선혁명군은 약 300명의 규모였으며, 출범 직후부터 대원을 모집하여 조직을 확대하였다. 조선혁명군은 만주, 국내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무장투쟁, 국내 조직과의 연락 등의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 경찰서와 같은 일제 침략기관을 공격하는 일은 조선혁명군 대원들의 주요 목표 중의 하나로서 여러 차례 시도되었다. 1932년에는 새로이 총사령(總司令)으로 임명된 양세봉(梁世奉)의 주도하에 싱징현(興京縣) 왕청문(旺淸門)에 총사령부를 설치하고, 부속중학을 조선혁명군 관할 하의 속성사관학교(速成士官學校)로 개편하여 군사 인재를 양성하기도 하였다. 정확한 합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조선혁명군 제1사 제3대대 제3중대 제3소대에 배치되어 활동하였다. 1936년 10월 9일 제3소대장 김병하(金炳河)의 지휘 하에 정운준(鄭雲俊)을 비롯한 2명의 동지들과 함께 경찰서를 습격하는 작전에 참여하였다. 부상당한 광산 노동자가 시약(施藥)을 구하러 온 것처럼 위장하여 국내에 잠입한 이들은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하고 평북 벽동경찰서 노장주재소(魯章駐在所)를 습격하였다. 이때 일본 순사 4명을 처단하고 경찰서 내에 있던 총기류를 포획하는 전공을 올렸으나, 교전 끝에 정운준을 제외한 동지 3명과 함께 전사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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