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90. 9. 20 ~ 1931. 2. 5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대동청년단
- · 의성단
- · 정의부
포상 정보
- · 애국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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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1990) 1890년 9월 20일 평안북도 정주군(定州郡) 안흥면(安興面) 안흥동(安興洞)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이명으로 승회균(承晦均)을 사용하였다. 1910년에 남만주 환인현(桓仁縣)으로 이주하였다. 1913년에는 김진호(金鎭浩)·이시열(李時說)·곽봉조(郭鳳祚) 등과 함께 대동청년단(大東靑年團)을 조직하고 활동하였다. 1918년에는 조용석(趙庸錫)이 이회영(李會榮)·이시영(李始榮) 등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만주 퉁화현(通化縣) 배달촌에 설립한 배달학교(倍達學校) 운영에도 참여하였다. 정확한 합류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23년 7월 편강렬(片康烈)이 양기탁(梁起鐸)의 도움을 받아 조직한 의성단(義成團)에서 활동하였다. 의성단은 길장선(吉長線) 인근의 카룬(卡倫)에 본부를 두었으며, 창춘(長春)·지린(吉林)·하얼빈(哈尔滨)과 같은 대도시에서 남만철도 파괴, 조선총독 및 관동장관 등 핵심인물 처단, 일제 식민통치기관 파괴, 군자금 모집을 목적으로 하였다. 의성단은 단장으로 있던 시기인 1925년 1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들의 통합운동 끝에 해체를 선포하고 정의부(正義府)에 흡수되었다.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은 의성단 설립자인 편강렬과 의성단 고문 양기탁이 요원하던 바이기도 했다. 편강렬은 1924년 3월 전만주통일의회주비회(全滿州統一議會籌備會發起會)에 참여하여 통합을 논의하는 등 적극적으로 통합을 추진하였으나, 같은 해 7월 24일 밀정의 발고로 인해 하얼빈에서 체포되면서 결실을 보지 못하였다. 편강렬의 뒤를 이어 2대 단장이 되어 통합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였으며, 이윽고 같은 해 11월 의성단과 군정서(軍政署)·광정단(匡正團)·의우단(義友團)·길림주민회(吉林住民會) 등 7개 단체는 정의부를 창설하게 되었다. 정의부는 1925년 3월 중앙조직을 구성하고 정식 업무를 시작하였다. 이때 생계부(生計部) 산업과 주임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생계부는 노동·농업·공업·상업 등 관할지역 주민의 생계에 관한 일체의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로, 정의부가 단순한 무장투쟁단체가 아닌, 군정부적인 성격을 가진 단체였음을 보여주었다. 이후 활동을 지속하던 중, 1931년 2월 5일 밀정 조직인 초공군(剿共軍) 사령부의 고문 이종영(李鍾榮)의 명령을 받은 부하에 의해 지린성 강남공원(江南公園)에서 암살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이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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