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범
愼元範1908. 2. 6 ~ 1970.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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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포장(2010) 1908년 2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巖郡) 덕진면(德津面) 노송리(老松里)에서 태어났다. 1932년 6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永保里) 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의 지도를 받고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는 소작쟁의(小作爭議)를 전개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세계 대공황의 영향력이 제국 일본을 거쳐 식민지 한국에까지 미치고 있었는데, 기존 식민지의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은 공황이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부분에 걸쳐 전면적이라는 점을 인식하였고 혁명적 노동운동 소작쟁의 투쟁과 같은 대중 투쟁과 이론적·계몽적 교육을 선도하면서 그 불만을 표출하였다. 특히 일제와 지주의 착취가 심하고 1920년 이래의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으로 인해 생활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전남의 농촌 지역은 소작쟁의가 활발히 일어났으며 일본 제국주의는 이러한 광범위한 사회운동을 ‘검거 선풍’으로 무마하려 하였다. 김판권·최판옥 등이 영암지방 사회운동의 중견으로서 분산적인 영암 운동을 통일 견고한 조직체를 만들고 소작쟁의를 지도하기로 하였다. 그리하여 상무기관을 영암군 영등리(永登里)에 조직하여 덕진면 운암리(雲岩里) 청년회(靑年會)에 ‘무산자(無産者)로서 일치단결하여 지주를 대항’하자는 구호로서 구(舊)소작인으로 하여금 소작권을 영구 계속케 할 것을 결의하여 단체 경작을 강행, 다시 소작케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공산주의자협의회(共産主義協議會)를 결성하였는데, 이에 동조하여 운암리·백계리(栢溪里) 방면에서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면서, 큰 북을 울리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勞動歌)를 크게 외치며 운암리 방면을 향해 시위행진을 하였다. 이에 일제 경찰에 붙잡혀서 1933년 9월 29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공산주의자협의회의 청년회원들로 소작인등을 협박하여 계속 소작할 수 있도록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운동의 행진을 계속하였다”라는 혐의로 이른바 가택침입,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벌금 50원 환형유치일수 50일을 받았다. 그러나 이에 불복, 항소하였는데 1934년 3월 7일 대구복심법원에서 벌금 50원 벌금 완납 않을 시에 1원을 1일로 환산한 기간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형을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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