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신도출

愼道出

1898. 2. 7 ~ 1959. 5. 13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도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경남 거창(居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남도 거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포상 정보

  • · 애족장(1992)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2) 1898년 2월 7일 경상남도 거창군(居昌郡) 거창면(居昌面) 동리(東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신중련(愼重鍊)이다. 경남 거창에서 군자금을 모집하고 선전물을 배포하였다. 1919년 8월 경남 거창군 거창면에서 이덕생(李德生)·김태연(金泰淵) 등이 항일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금하고 의용병(義勇兵)을 모집하여 중국 동삼성(東三省) 소재 군정서(軍政署)에 지원할 계획을 세우자 이에 호응하여 군자금 813원을 제공하였다. 또한 중국에서 제작된 『신한별보(新韓別報)』를 배포하는 활동을 하였다. 『신한별보』는 독립 사상에 대한 선전과 동지 규합의 뜻을 담은 신문으로, 동향 출신인 주남수(朱南守)가 국내로 반입하여 수천 부를 등사한 것을 동료들과 함께 배포하였다. 이 일로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월 8일 거창경찰서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과 출판법 위반으로 조사를 받으며 1년 5개월 동안 고초를 겪다가 풀려났다. 그 후에도 항일 활동을 지속하였다. 또 다시 일제 경찰에 붙잡혀 1935년 2월 10일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금고 8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보영⋮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