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대용
申大勇1882 ~ 1923. 7. 8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의민단
포상 정보
- · 애국장(2011)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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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장(2011) 함경남도 안변군(安邊郡) 배화면(培花面) 송산동(松山洞) 출신이다. 1921년 당시 40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2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가 다른 신대용(申大湧·申大容·申大用)과 신헌(申憲)·신태현(申泰鉉) 등을 사용하였다. 북간도 지역에서 의민단(義民團)에 가담하여 모연대장(募捐隊長)과 경호대장(警護隊長) 등으로 활동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의 탄압과 착취가 나날이 심화되면서 많은 한인들은 고향을 떠나 만주로 망명하였다. 국내의 의병과 애국지사들은 만주지역의 한인사회를 기반으로 독립운동기지를 설립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시기에 1915년 무렵 만주로 건너가 지린성(吉林省) 옌지현(延吉縣) 조양천(朝陽川)에서 거주하였다. 1920년 4~5월 무렵 왕칭현(王淸縣) 춘화향(春華鄕)에서 천주교도와 의병이 중심으로 의민단(義民團)이 설립되었다. 단장은 방우룡(方雨龍)이고 부단장 김연군(金演君)이며, 재정은 천주교인들의 지원으로 인해 다른 단체에 비하여 비교적 윤택하였다. 의민단에 참여하여 모연대장과 경호대장으로 활동하였다. 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락을 주고받으며 국내진공작전과 독립을 목적으로 무장투쟁 활동에 진력하였다. 같은 해 7월 26일 북간도 독립군단의 연합부대로 동도독군부(東道督軍府)가 창설되자 대한독립군과 함께 제2대대로 편성되었다. 그 해 9월에는 룽징현(龍井縣) 일대를 중심으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수차례 전개하였다. 1921년 7월경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혀 함흥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청진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옥중에서 적유단붕우회(赤油團朋友會)를 결성해 활동하면서, 1923년 7월 8일 전인학(全仁學)·최익룡(崔翊龍)·신례균(申禮均)과 함께 탈옥을 시도하다가 간수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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