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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칠

申文七

1889. 11. 12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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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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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평산(平山)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평산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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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주비단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89년 11월 12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세곡면(細谷面) 덕촌리(德村里)에서 태어났다. 1920년 12월경부터 평산의 비밀결사 주비단(籌備團)에 가입하였다. 주비단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말과 1920년대 초에 독립전쟁을 천명한 후 이를 지원하기 위한 단체로서 국내에 조직한 것이다. 주비단은 임시정부에서 보내온 「주비단규칙」을 바탕으로 조직되었다. 황해도 주비단은 단원 10명으로 분단(分團)을 삼고 그 위에 다시 소단(小團)과 연단(聯團)을 조직하였고, 사령장(司令長)이 조직을 통할하고 있었다. 주요 활동은 의열투쟁과 군자금 모집이었다. 평산의 주비단은 1920년 (음)7월경 조직된 단체로, 황해도 주비단의 소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단장 유상렬(柳相烈) 등과 함께 단원 모집과 군자금 모집을 전개하였다. 평산(平山)·신계(新溪)·금천(金川) 등지에서 부호들을 대상으로 약 5천 원을 모집하여 임시정부에 송금하였다. 1921년 4월 소단장 유상렬이 세곡면 수곡리(修谷里)에서 부하들과 함께 일제의 밀정 2명을 처단하였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일제 경찰의 추적을 받았다. 1921년 7월 1일 일제 경찰의 추적을 피해 유상렬과 함께 세곡면 광평리(廣坪里) 산중에 숨었다. 이때 남천경찰서에서 출동한 일제 경찰과 격투하며 저항하다가 붙잡혔다. 1921년 10월 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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