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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만식

申萬植

1889. 10. 8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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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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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 옹진(甕津)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황해도 옹진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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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3.1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1889년 10월 8일 황해도 옹진군(甕津郡) 흥미면(興嵋面) 안락리(安樂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신재균(申在均)이다. 1919년 옹진군 흥미면 안락리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4월 13일 안락리에서 박봉희(朴鳳禧)·조평도(趙平道) 등이 300여 명의 군중 앞에서 독립운동의 취지를 설명하고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4월 14일에도 안락리에서 조업증(趙業曾)·차문옥(車文玉) 등이 주도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이 안락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헌병에 붙잡혔다. 1919년 6월 12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같은 해 8월경 차문옥·조평도·조종수(趙宗秀)·김창수(金昌洙)·박덕윤(朴德允) 등과 함께 비밀결사 대한국민적십자회(大韓國民赤十字會)에 가입하였다. 1921년 5월까지 독립사상을 선전하며 회원 수십 명을 모집하였다. 같은 해 6월 1일 조종수의 지시로 차문옥과 박덕윤이 안락리 경찰관 주재소에 몰래 들어가 권총 1정과 탄약 24발을 들고 나왔다. 이 일이 발각되어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21년 10월 20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해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전병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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