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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일선

愼一先

1903. 6. 6 ~ 1992.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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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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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岩)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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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903년 6월 6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岩郡) 덕진면(德津面) 노송리(老松里) 출신이다. 이명(異名)은 한자가 다른 신일선(愼壹善)을 사용하였다. 1932년 6월 전남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永保里) 영보정(永保亭) 일대에서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의 지도를 받고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쟁의(小作爭議)를 전개하였다. 1920년대 후반부터 세계 대공황의 영향력이 일본을 거쳐 식민지 한국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기존 식민지의 열악한 경제 상황 속에서 지식인들은 혁명적 노동운동과 소작쟁의 투쟁과 같은 대중 투쟁과 이론적·계몽적 교육을 선도하였다. 특히 일제와 지주의 착취가 심하고 1920년 이래의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으로 인해 생활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전남의 농촌 지역은 소작쟁의가 활발히 일어났다. 김판권은 1920년부터 일본에서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인 오스키 사카에(大杉榮), 사회주의자인 사카이 토시히코(堺利彦) 등과 교유하면서 신사회 수립을 위한 계급투쟁론을 수용하였다. 1931년 고향인 영암 덕진면에 귀향하여 최판옥 등과 협의하여 1932년 5월 1일 메이데이에 기념행사를 진행하고자 했지만 식민지 경찰의 경계가 엄중하였다. 그래서 그 해 6월 4일이 (음)5월 1일에 해당하므로 노동절 기념일로 삼고 시위운동을 통해 농민층을 규합할 것을 계획한 ‘영암 농민 데모 사건’이자 ‘소작권 이동 반대 시위’운동에 함께 참여하였다. 1932년 6월 4일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에서 운암리·영보리·노송리·장암리(場岩里) 등의 청년회원 70여 명을 규합하여 뒷산에서 열린 산유회(山遊會)에 참여하였다. 운암리(雲岩里)·백계리(柏溪里) 방면에서 소작문제가 발생하여 이에 대한 시위운동을 하고 신구(新舊) 소작인 등에게 소작권 이동을 방지할 것을 결의하고 모두 이에 찬동하였다. 그리하여 보자기로 만든 기를 앞세우고 큰 북을 두드리고 나팔을 불며 노동가를 크게 부르고, 대오를 정돈하여 마을로 들어가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행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소작권 이동을 하지 않도록 협박하고 만세를 외쳤다. 당시 운암리 청년회(靑年會)에서 ‘무산자(無産者)로서 일치단결하여 지주를 대항’하자는 구호로서 구 소작인으로 하여금 소작권을 영구히 계속케 할 것을 결의하여 단체 경작을 강행, 다시 소작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른바 ‘영암농민 데모사건’으로 1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붙잡혔다. 1933년 6월 22일 예심이 종결되었다. 같은 해 9월 29일 불구속 피고 상태로 재판을 받아, “공산주의자협의회의 청년회원들로 소작인등을 협박하여 계속 소작할 수 있도록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운동의 행진을 계속하였다”는 명목으로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6월(미결구류일수 중 18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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