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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주

愼鏞周

1906. 2. 14 ~ 1988. 6.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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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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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영암(靈岩)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영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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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1906년 2월 14일 전라남도 영암군(靈岩郡) 덕진면(德津面) 운암리(雲巖里) 출신이다. 전해진 자료의 한계로 자세한 출신 배경과 집안 내력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다. 1932년 6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永保里) 일대에서 동료 70여 명과 함께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과 일제의 지주 옹호를 규탄하며 소작쟁의(小作爭議)를 전개하였다. 일제와 지주의 착취가 심하고 1920년대 이래의 산미증식계획(産米增殖計劃)으로 인해 경제적 생활의 어려움이 극에 달했던 전남의 농촌 지역은 소작쟁의가 그만큼 더욱 활발히 일어났다. 평소 문사훈(文士勳)·박수봉(朴壽奉)·신용점(愼鏞點) 등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에서 빈번히 소작권 이동이 발생하고 있음을 유감으로 여기고 1932년 3월 22일 밤 덕진면 영보리의 청년회관(靑年會館)에서 박유성(朴裕成) 등 영암농민조합(靈巖農民組合)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소작권이전 방지방법에 대해 협의하여 운암리 소재 박찬수(朴贊秀)·신병진(辛秉鎭)·최기섭(崔基燮) 등이 지주로부터 새롭게 소작권을 얻은 구 소작인 박한용(朴漢用)의 소작 논 15두락, 박긴상(朴緊相)의 논 3두락, 박동진(朴東鎭)의 소작 논 4두락을 청년회원이 출동 경작하고 구 소작인에게 계속 소작시키게 하기로 결의하였다. 또한 1932년 3월 23일, 4월 30일, 5월 15일 3회에 걸쳐서 청년회원 수십 명과 함께 위의 소작 논에 출동하여 스스로 경작하고 새로운 소작인의 경작을 중지하게 하였다. 1932년 5월 1일 노동절을 기하여 최판옥(崔判玉), 김판권(金判權) 등의 주도로, 일제의 경계를 피해 같은 해 6월 4일에 농민들과 함께 시위운동을 벌일 것을 계획하였고, 이들은 당일 영보정(永保亭) 뒷산에서 덕진면 내 영보리·운암리·노송리(老松里)·장암리(場岩里) 등의 청년회원 약 70명과 함께 운암리·백계리(栢溪里) 방면의 소작권 이동 방지를 위해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그리고 선두에 적기(赤旗)를 세우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고 노동가(勞動歌)를 부르며 운암리 방면으로 시위 행렬을 끌고 나갔고 차례로 새로운 소작인의 집으로 몰려가 그 행위를 질타하고 ‘소작쟁의만세’를 외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이른바 ‘영암농민 데모사건’으로 100여 명의 동지들과 함께 영암경찰서에 붙잡히게 되었다. 1933년 6월 22일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예심이 종결되어, 같은 해 9월 29일 같은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청에서 이른바 가택침입·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과 업무방해죄로 징역 8월(미결구류일수 중 240일 본형 산입)을 받았고 목포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3년 10월 6일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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