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선
申達善1886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군사통일회(북경)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5) 경기도 여주군(驪州郡) 주내면(州內面) 신진리(新津里) 출신이다. 1922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7세로, 1886년생으로 추정된다. 1922년 서울에서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나섰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상하이(上海)·창춘(長春)·간도(間島)·시베리아 지역에서 독립운동가들과 만나 독립운동자금 모집에 관해 협의하였다. 중국 베이징에서 서울 적선동(積善洞) 거주 윤용식(尹容植)에게 ‘한민정(韓民政)’과 ‘한일진(韓一進)’, ‘군사통일회(軍事統一會)’ 명의로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라는 서신을 보냈다. 군사통일회의 정식 명칭은 북경군사통일회로, 1921년 4월 17일 베이징에서 박용만(朴容萬)·신숙(申肅)·신채호(申采浩) 등이 주축이 되어 군사통일을 위해 논의하였던 회의였다. 군사통일회의는 만주와 러시아에 산재한 독립군과 독립운동단체를 규합하고 통일된 군사기관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열렸다. 1922년 1월 22일 서울로 돌아와 익선동(益善洞) 이승모(李承模)의 집에 머무르며, 민영휘(閔泳徽)·한규설(韓圭卨) 등에게 독립운동자금 납부통지서를 보냈다. 1922년 1월 24일 윤용식을 방문하였으나 만나지 못하였고, 그 후 윤용식의 친척인 윤범식(尹範植)을 만나 태평양회의가 진행되고 있는 시기를 맞아 “독립군이 북간도에서 활동을 전개하기 위해 군사통일회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고 있다고 하며 윤용식에게 독립운동자금을 제공하도록 하라고 요청하였다. 1월 25~26일 윤범식을 다시 만나 독립운동자금 제공을 재차 요청하였다. 이러한 활동 중 1922년 2월 4일 서울 창성동(昌成洞) 이범식(李範植)의 집에서 종로경찰서 형사에게 붙잡혔다. 2월 말 이른바 ‘정치에 관한 범죄 처벌의 건’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고, 같은 해 3월 3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최병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