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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식

申明植

1875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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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명식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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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목포(木浦)만주방면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남도 목포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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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재류조선인호회
  • · 중로군정서
  • · 대한독립군단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5)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5) 전라남도 목포부(木浦府) 출신이다. 자료에 따르면 1875년생으로 추정된다. 이명으로 한자를 달리하는 신명식(申命植)·(申命湜)을 사용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만주로 이주한 시기는 확인할 수 없으나, 활동 당시 지린성(吉林省) 닝안현(寧安縣) 영고탑(寧古塔)에 거주하였다. 1922년 영고탑 재류조선인호회(在留朝鮮人戶會) 역원으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영고탑 재류조선인호회는 최계화(崔桂華)와 최충호(崔忠浩)가 주도하였던 단체였다. 주로 임시정부와 연락을 취하여, 동지연선(東支沿線)에 출몰하는 일제의 파견대 공격과 모연대(募捐隊)를 조직하여 군자금 모집, 선전문 배포 활동을 하였다. 1924년 임시정부 대표와 닝안현 황기둔(黃旗屯)에서 통일회의를 개최할 것에 대해 협의하는데 앞장섰다. 또한 중로군정서(中路軍政署)의 간부로 활동하였다. 중로군정서는 1924년 5월에 군정서를 다시 부흥하기를 원하는 인물들이 모여 결성된 단체였다. ‘보수적 애국당(愛國黨)’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국수주의(國粹主義)와 독립을 주장하였다. 본부는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동빈현(同賓縣)에 위치해 있었으며, 지부는 해림(海林)·일면파(一面坡)·조길밀하(鳥吉密河)·목단강(牡丹江)·영고탑·동녕(東寗)에 두었다. 총재 현천묵(玄天默)을 비롯하여 총 12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로군정서의 간부직 중 하나였던 서기장(書記長)을 담당하였다. 서기장 직과 함께 인쇄과(印刷課) 과장으로도 활동하였다. 1925년에는 대한독립군단 경신부원이 되어 항일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활동은 확인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남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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