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헌
宋柱憲1872. 9. 10 ~ 1950. 9. 10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조선고사연구회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관련 사건
- · 파리장서운동
- · 순종복위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2년 9월 10일 전라남도 고흥군(高興郡) 두원면(豆原面) 학곡리(鶴谷里)에서 아버지 송윤호(宋潤浩)와 어머니 고흥 유씨(高興柳氏)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여산(礪山)이고,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단종에 대한 충절로 유명한 서재(西齋) 송간(宋侃)의 후손이다. 자는 윤장(允章)이며, 호는 삼호재(三乎齋)이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의 제자이고, 면암(勉菴) 최익현(崔益鉉)과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1919년 만세운동 이후 독립청원운동을 결의한 유림은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여 한국의 독립을 제안하고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려고 하였다. 이른바 파리장서운동으로 불리는 이 운동에 참여하여 청원서에 연명하였다. 전남 출신의 서명자 4명 가운데, 유일한 고흥 출신 인물이었다. 한편, 같은 해 3월 전개된 순종의 복위운동에도 참여하였다. 3월 1일 이래로 경성에서 만세운동이 개시되자, 3월 2일 경성부(京城府) 수창동(壽昌洞)의 여관에서 유준근(柳濬根)이 유생 역시 묵시·방관할 수 없다고 하며 백관형(白觀亨) 등 12명의 유생을 회합하였다. 이때 참석하여 이후의 활동을 함께 계획하였다. 먼저 유준근은 3월 5일 고종의 반우식(返虞式, 장례를 치른 후 위패를 모시고 돌아와 지내는 첫 번째 제사)을 기회로 순종에게 즉각적인 복위와 독립 선포를 요청하는 상소를 제출하자고 제안하였고, 유림 동지들과 함께 이에 찬성하였다. 거사 당일 경기도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청량리(淸涼里)에 반우 행렬이 지날 때 순종의 가마 앞으로 달려가 가슴에 숨겨 둔 상소를 전달하려고 하였으나, 곧 일제 헌병에 제지당하고 남산의 조선헌병대사령부로 연행되었다. 이 일로 경성지방검사국에서 조사를 받고, 1919년 8월 30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과 보안법 위반으로 공판에 회부되었으나, 11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무죄를 받고 풀려났다. 이후 1920년 1월 18일 동지들과 함께 조선고사연구회(朝鮮古史硏究會)를 설립하였다. 조선고사연구회는 한국 고대 역사를 연구하여 한국인의 부흥을 목적으로, 정안립(鄭安立)이 중심이 되어 창설된 단체이다. 1920년 2월에는 대표로 추천되어 정안립·송원태 등과 함께 일제에 항의하고자 일본으로 가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1920년 4월 1일 조선고사연구회는 만주에 신고려국을 건설하겠다는 등의 언동이 문제되어 일제에게 해산당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김인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