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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악

申東岳

1875. 10. 16 ~ 1948.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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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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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덕(盈德)3.1운동

지도 위치

시·군·구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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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영덕군 창수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18) 1875년 10월 16일 경상북도 영덕군(盈德郡) 창수면(蒼水面) 미곡동(美谷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신봉균(申奉均)·신경등(申景登)을 사용하였으며 일제가 창씨개명을 강요하자 평산동악(平山東岳)으로 고쳤다. 1919년 3월 19일 영덕군 창수면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영덕군의 만세운동은 김세영(金世榮)과 권태원(權泰源)·정규하(丁奎河) 등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서울 등지의 만세운동 소식을 전달하고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여 3월 18일 영해면(寧海面) 성내동(城內洞) 장날을 기해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협의하였다. 곧이어 영해면·병곡면(柄谷面)·축산면(丑山面)·창수면의 기독교도와 권(權)·남(南)·박(朴)·백(白)·이(李)의 5성(姓)의 양반과 지역 유지가 만세운동 계획에 합류하였다. 1919년 3월 18일 오후 1시 30분경 성내동 장터에서 영해공립보통학교(寧海公立普通學校) 학생을 포함한 1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선창하였다. 장터에 모인 군중이 이에 호응하며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2,000여 명의 군중은 시장 부근을 줄지어 행진하였다. 만세운동은 병곡으로 확산되었다. 400~500여 명의 군중이 병곡경찰관주재소와 병곡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같은 날 이수각(李壽珏) 등은 다음날 창수경찰관주재소 부근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계획하였고, 다수의 동지를 규합하고 각 마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 참여를 권유하였다. 3월 19일 창수경찰관주재소 앞에 주도자와 함께 200여 명의 군중이 모여 만세를 연이어 불렀다. 이때 나채선(羅採先) 등과 함께 ‘한국독립만세’를 연달아 부르며 창수동경찰관주재소 주변을 열을 지어 행진하였다. 만세운동 군중은 경찰관주재소 안으로 몰려가 공문서 등을 훼손하며 경찰의 무력 진압에 강하게 저항하였다. 3월 18일~3월 19일 영해군 일대의 만세운동으로 15명이 사상하고 170명 이상이 체포되었는데 이때 붙잡혔다. 1919년 4월 5일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로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으로 송치되었다가 같은 해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6월, 집행유예 3년을 받고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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