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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욱

宋鼎頊

1897 ~ 1929. 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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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송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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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전주(全州)임시정부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전주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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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대한민국 임시정부

포상 정보

  • · 건국포장(2018)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건국포장(2018) 전라북도 전주(全州) 출신이다. 1929년 7월 11일자 『동아일보』에 따르면 사망 당시 33세로, 1897년생으로 추정된다. 호(號)는 사하(沙河)이다. 아버지는 독립유공자인 송강선(宋剛瑄)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전북 옥구(沃溝) 조사원으로 활동하였다. 아버지 송강선은 당시 호남에서 이름에 높았던 참판 기정진(奇正鎭)의 손자이자 문유(文儒)로 추앙받았던 기우만(奇宇萬)과 서간을 주고받으며 교류한 학식을 갖춘 석학으로 알려져 있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로부터 학문을 수학하였고, 청년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잠시 유학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19년 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상하이(上海)에 임시정부가 세워지자 그 해 8월 아버지와 함께 상하이로 건너갔다. 1919년 9월 9일 황진남(黃鎭南)과 함께 임시정부 국무원(國務院) 서기(書記)로 임명되었고, 곧이어 국무원 비서(祕書)로 근무하였다. 한편, 당시 임시정부는 다양한 임무를 맡은 조사원(調査員)·특파원(特派員)·선전위원(宣傳委員) 등을 국내에 출신 연고가 있는 해당 지역에 파견하고 있었다. 이들의 역할은 정부의 활동에 대한 선전, 국내 독립운동 단체의 조직·정세 파악과 지역 유력인사들이 독립운동에 동참하도록 권유하는 역할 등이었다. 이에 전라도 지방의 유력자와 재산가를 임시정부에 참여시키려는 목적으로 아버지 송강선과 함께 전북 옥구의 조사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런데 1920년 중반 국내로 돌아가서 활동하던 아버지 송강선이 일제에 붙잡혀 옥고를 겪자, 그 해 12월 청가(請暇)를 내고 국내로 돌아왔다. 이후 1921년 5월 30일 의원면직으로 임시정부 국무원 비서에서 정식으로 물러났다. 국내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학업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서 철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국내로 다시 돌아와 1927년부터 『동아일보』 기자로 입사해 근무하였다. 1927년 전라도 일대에서 빈번하게 발생한 일본인 지주와 수리조합, 지대 문제를 둘러싼 갈등 문제를 특집으로 다룬 「실황답사기(實況踏査記)」를 비롯해 「문화통치(文化政治)의 표리(表裏), 기유래(其由來)와 십년간(十年間)의 실적(實績)」 등의 논설을 통해 일제의 정책을 비판하였다. 1929년 1월 병에 걸려 전북 김제의 금산사(金山寺)에서 요양하며 치료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병에 차도가 없이 계속 악화 되었고, 결국 1929년 7월 9일 오후 8시 전주군 이동면(伊東面) 중산리(中山里)의 자택에서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원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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