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록
宋永錄1901. 8. 7 ~ 1932. 9.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8)
관련 사건
- · 1919년 3월 경기도 개성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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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8) 1901년 8월 7일 강원도 이천군(伊川郡) 이천면(伊川面) 탑리(塔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송영록(宋榮錄)이다. 1910년 일제의 한국강제병합 당시부터 ‘조선의 독립’을 희망하였다. 1919년 당시 사립송도고등보통학교(私立松都高等普通學校) 2학년에 재학하면서 학교 기숙사에 거주하고 있었다. 3월 경기도 개성군(開城郡) 송도면(松都面)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일 전후 독립선언서가 전국으로 배포되기 시작한 후 서울·평양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같은 날 개성읍내의 한영서원(韓英書院) 학생들이 동요하였다. 3월 3일 개성군 송도면에서 읍내를 중심으로 만세운동이 발발하였다. 오후 2시 호수돈여학교(好壽敦女學校), 사립 송도고등보통학교 학생들이 독립가와 찬송가를 부르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는데, 이때 함께 하였다. 주민 1,000여 명이 이에 동조하고 면내를 돌며 만세를 외쳤다. 학생들 중 일부가 경찰에 체포되자 주민들이 개성경찰서로 몰려갔다. 오후 5시 30분~ 6시 즈음 학생 50여 명이 일장기를 훼손하였으며 오후 9시 30분경 1,000~2,000명의 군중이 남대문 방면에서 남본정경찰관파출소(南本町警察官派出所)로 몰려가 돌을 던져 유리창을 파괴하였다. 이날 만세운동은 자정을 넘어 진정되었다. 이튿날인 3월 4일 오후 2시경 학생 100~150여 명, 주민 500~600여 명과 함께 독립 연설을 하고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운동을 재기하였다. 군중과 함께 북본정(北本町) 병교(兵橋) 부근에서 남대문까지 나아가며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였다. 헌병과 철도수비대원이 협력해 만세운동 군중을 저지하고 학생 4명을 비롯해 12명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만세운동은 이에 그치지 않고 3월 7일까지 계속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지들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 1919년 5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서대문감옥에서 옥고를 겪은 후 같은 해 11월 25일 풀려났다. 1923년 이천군 밖에서 공부하는 학생들 중심으로 설립한 이천학우회 부회장으로 선출되었고 하기강습회 활동을 하였다. 1927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 6월 1일 의사면허를 취득하였으나, 1932년 9월 5일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이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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