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 독립운동가 목록으로

고제천

高濟川

1875. 12. 12 ~ 1973. 7. 19

김판서 캐릭터 이미지

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고제천

김판서는 역사 탐구를 돕는 가상의 AI 문화해설사예요.

추천 질문을 누르거나, 궁금한 내용을 직접 물어보세요.

0/200자
전북 고창(高敞)의병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전라북도 고창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도에서 보기 →

관련 단체

  • · 최익현 의병
  • · 독립의군부

포상 정보

  • · 애족장(199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1990) 1875년 12월 12일 전라북도 고창군(高敞郡) 신림면(新林面) 가평리(加平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장흥(長興)이고, 『송천집(松川集)』에 고자성(高子聖)이란 이명이 기재되어 있다. 종숙부(從叔父)이자 최익현(崔益鉉)의 제자인 고석진(高石鎭)과 함께 의병 활동에 참여하였으며, 역시 최익현의 제자인 임병찬(林炳讚) 계열의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전북 지역은 최익현의 주도로 위정척사 사상이 확산하였으며, 그 제자인 임병찬·전우(田愚) 등의 사례와 같이 하층 양반·상층 양인·향리 등을 끌어들여 상당한 사회적 지지와 관계망을 확보하고 있었다. 한편, 1905년 을사늑약으로 국권이 위협받게 되자 전국적으로 의병 봉기가 고조되었고, 최익현 역시 전북을 중심으로 거병을 모색하였다. 제자인 고석진의 권유로 군사 경력자인 임병찬을 참여시켜 1906년 (음)윤4월 전북 태인(泰仁)에서 봉기하였다. 이때 고용진(高龍鎭) 등의 호소에 응하여 종숙부 고석진이 있는 최 익현의 태인의병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태인의병이 대한제국 진위대(鎭衛隊) 파견을 맞이해 동족 간 전투를 거부하고 해산하자 임병찬·고석진 계열 유림의 항일 활동은 휴지기에 들었다. 국권 상실 이후인 1912년 서울에서 곽한일(郭漢一)·이칙(李侙) 등 기호 지역 유생과 전직 관료가 중심이 되어 독립의군부(獨立義軍府)가 결성되었다. 고종(高宗)의 밀칙에 근거하여, 양병(養兵)·외교·투서 및 항의 활동 등을 주요 방법으로 삼으며 궁극적으로는 거병을 모색하기 위한 지하조직이었다. 이칙 등은 임병찬과 연결하여 전라도의 유생들을 포섭하고자 하였다. 이에 임병찬과 고석진이 참여하게 됨으로써 전라도 지역에도 독립의군부 활동이 확대되었다. 특히 종숙부 고석진은 독립의군부 총대표(總代表) 중 1인으로 추대되었다. 이때 독립의군부에 참여하게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의군부 초기에는 기호 지역 전직 관료와 유생이 중심이 되었으나, 1913년 1차 발각으로 기호 지역 조직이 와해되었다. 그 이후에는 호남 지역 조직이 중심이 되어 호남 내의 조직 정비와 연락을 담당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무국(軍務局) 종사관(從事官)을 맡아 호남 지역 연락책으로 활동하였다. 「독립의군부 정헌(獨立義軍府正憲)」에 따르면, 군무국은 단순한 지방기관이 아니라 원수부(元帥府) 휘하의 직속기관으로 총관(總管)·서기관(書記官)·종사관을 둔 조직으로서, 의군부 내에서도 비중 있는 직임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임병찬의 문집 『돈헌유고(遯軒遺槁)』에 나타나는 사례처럼, 독립의군부 내의 많은 임원은 자신의 자손과 인척을 대동하거나 혹은 대리로서 참석시켰으므로, 고석진의 종조카로서 여러 방면의 독립운동에 종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915년 5월경 2차로 조직이 발각되고 주요 임원들이 체포되어 독립의군부는 사실상 해체 상태가 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구열회⋮

국어사전

국어사전

원문에서 어려운 낱말을 선택하거나 직접 검색해 보세요.

낱말을 검색하면 뜻풀이가 여기에 표시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