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요철
宋堯哲1860 ~ 미상
지도 위치
관련 단체
- · 13도유약소
포상 정보
- · 애족장(2015)
관련 사건
- · 을사오적 암살단 사건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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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5) 경기도 파주군(坡州郡) 출신이다. 1906년 당시 47세인 것으로 보아 1860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1883년 8월 유학(幼學) 신분으로 제대강(製代講)에 입격하였고, 관례에 따라 증광문과(增廣文科) 초시(初試)에 응시할 자격을 인정받았다. 유학자로서 1905년 13도유약소(十三道儒約所)에 참여하였고,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단 계획을 지원하였다. 1905년 (음)9월 서울에서 김석항(金錫恒)이 ‘대한13도유약소’를 설립하였다. 일본이 조선의 자주권과 독립·영토 보전을 보증한다며 맺었던 조약의 내용과 이에 반하여 조선 이권을 침탈한 사례를 하나하나 대조하여 이것이 국제공법(國際公法)에 어긋나는 것임을 논박하였다. 통문(通文)을 각국 공사관에 보내어 한국을 지원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13도 유생대표 26명의 한 사람으로서 여기에 서명하였다. 11월 17일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었다. 김석항·기산도(奇山度) 등은 이완용(李完用)·박제순(朴齊純)·이근택(李根澤)·이지용(李址鎔)·권중현(權重顯) 등 소위 ‘을사오적’이 멋대로 조약을 성사시켜 국권을 무너뜨렸다 하여 이들을 처단할 계획을 세우고 동지를 규합하였다. 이 계획에 찬동하여 거사에 쓸 자금으로 당백전(當百錢) 3만 냥을 지원하였다. 이들은 권총과 단도 등을 준비하여 ‘을사오적’을 암살하기 위해 노상에 잠복하여 기회를 엿보았다. 경계가 엄중하여 여러 차례 실패하였다. 결국 계획이 발각되어 11월 28일 오전 9시 서울 니동(泥洞) 한성모(韓聖模)의 집에서 동지들과 함께 붙잡혔다. 1906년 5월 13일 평리원에서 이른바 모살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1907년 11월 28일 특사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장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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