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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인명사전 - 한국독립운동정보시스템

1889. 3. 26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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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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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남 중화(中和)국내항일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평안남도 중화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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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단체

  • · 천도교연합회
  • · 고려혁명당

포상 정보

  • · 애국장(2010)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국장(2010) 1889년 3월 26일 평안남도 중화군(中和郡) 간동면(看東面) 간동장리(看東場里)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면서 천도교에 입교하였다. 1919년 3월 평안남도 중화군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천도교 중화교구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천도교 평양교구를 방문하고 독립선언서 200장을 가지고 온 김성진(金聖鎭)으로부터 독립선언서를 전달받았다. 이 무렵 “금회 독립선언에 참가한 것은 조선 민족의 정당한 의무라고 사유하는 바이다. 아 조선은 4,000년의 신성한 방가(邦家)로 아(我) 민족은 2,000만 중의 민족문화이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하고 민의가 아닌 한일의 병합을 단행하여 삼천리를 식민지로 삼고 이천만의 구(口)를 노예로 삼은 우금(于今) 10재(載)와 같은 고통은 진실로 아 민족이 감내할 수 없다”라고 생각하고 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하였다. 1919년 3월 평남 중화에서 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붙잡혔다. 1919년 7월 19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상고하였으나 그 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1920년 7월 평남 중화 천도교구에서 청년강연회(靑年講演會)를 조직할 때 간사로 선정되었다. 1920년 9월 10일 평남 서흥군 읍내 소재 천도교구에서 열린 천도교청년회 창립총회에 연사로 참여하여 ‘지기심양기재(止其心養其才)’라는 주제로 강연하였다. 1921년 5월 29일 황주군과 중화군의 연합으로 결성된 천도교청년회연합순회강연단의 구성원으로 참여하여 겸이포 천도교 교전교실 내에서 강연회를 개최하고 ‘신문화건설과 인내천’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1922년 천도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독립운동을 위해 결성된 고려혁명위원회(高麗革命委員會)에 참여하고 비서로 활동하였다. 고려혁명 위원회는 천도교 교주인 손병희 사후 천도교 중진 간부들이 교주의 민족정신을 계승하고자 결성한 독립운동단체이며, 만주의 정의부(正義府)와 긴밀히 연계하여 활동하였다. 1924년 5월 천도교연합회의 서무간사로 일하면서 연합회에서 만들어 지방교회에 배포할 계획이었던 혁신공약장의 내용 중 일부가 종로경찰서의 불온 판단으로 인해 배포되지 못하자 일제 당국과 교섭하여 관련 문구를 고쳐 배포하기로 하였다. 1926년 11월 천도교연합회 간사로 활동 중 류공삼과 함께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1926년 천도교청년당을 중심으로 중국 지린(吉林)에서 조직된 비밀결사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고려혁명당은 천도교연합회·재만주정의부·형평사 등 3단체 연합의 비밀결사로 하얼빈(哈爾濱)·창춘(長春)·펑톈(奉天)·지린 등 만주에 근거를 두고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1926년 3월 서울에서 이동구(李東求)로부터 “정의부·천도교·형평사와 삼각동맹을 맺어 그 대동단결의 힘으로 러시아공산당과 상통하여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제국 정부를 전복시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독립운동 방략을 논의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울에서 천도교연합회 활동을 있으면서 고려혁명당에 가입하여 민족독립을 위해 활동하였다. 고려혁명당은 신간회에 앞서 민족유일당 형성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민족운동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으나 민족주의·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을 극복하지 못하고 내부의 동요가 일어나 활동성이 점차 약해져 갔다. 1926년 12월 말 창춘 소재 동아정미소에서 천도교 간사 이동락(李東洛)이 일본영사관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이동락이 가지고 있던 선언서·강령·당략·규약·맹약 등 고려혁명당 관련 서류 속에 관계자로 성명이 기입되어 있었다. 1927년 1월 중순 서울에서 천도교연합회 상무간사로 종사하고 있던 중 조선형평사의 장지필(張志弼)·조귀용(趙貴用)·서광훈(徐光勳)·오성환(吳成煥) 등과 함께 붙잡혔다. 1928년 10월 6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구류일수 중 200일 본형 산입)을 받고 신의주형무소에서 옥고를 겪었다. 1930년 4월 6일 이동욱과 함께 신의주형무소에서 가족친지와 천도교 신도들의 환영을 받으며 만기 출소로 풀려났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김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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