沈能弼
能弼1893. 4. 27 ~ 1950. 8. 5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5)
관련 사건
- · 대호지면
- · 정미면 천의장터 시위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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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1995) 1893년 4월 27일 충청남도 서산군(瑞山郡) 대호지면(大湖芝面) 마중리(馬中里)(현 당진군 대호지면 마중리)에서 태어났다. 향리에서 농업에 종사하였고, 1919년 4월 4일 일어난 대호지면·정미면 천의장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호지면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남주원(南柱元)·이두하(李斗夏)·남계창(南啓昌)·남상직(南相直)·남상락(南相洛) 등 유생들은 1919년 3월 서울에서 열리는 고종 장례식에 참여하였는데, 여기서 만세운동을 접하였다. 이후 서산 지역에도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위 열기가 고조되었다. 서산군 대호지면에서는 면장 이인정(李寅正)을 비롯하여 면서기 김동운(金東云)·강태완(姜太玩)·민재봉(閔載鳳)과 면사무소 직원 송재만(宋在萬)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주도하였다. 이들은 인근 지역에서 일어난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뒤 대호지면에서도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 거사일은 천의장터 장날인 4월 4일로 결정하고, 사전에 면내의 각 리(里)별로 연락망을 구성하였다. 다수의 주민들을 만세시위에 참여시키기 위한 방안으로 「도로수선병목정리(道路修繕並木整理)의 건」이라는 공문을 각 마을에 보내 도로 보수를 위해 한집에 한명씩 4월 4일 면사무소로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4월 4일 아침 면사무소 앞으로 60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면장 이인정은 도로 보수가 목적이 아니니, 만세운동을 위해 천의장터로 행진하자고 연설하였다. 이에 공감한 많은 주민들이 만세운동에 동참하였다. 만세시위 대열이 갖추어지자, 다른 행동 선봉대원들과 함께 선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며 천의장터를 향해 행진하였다. 행진하는 도중 만세시위를 목격한 다른 주민들도 계속 만세시위에 동참하여 1,000여 명으로 확대되었다. 만세 시위대의 선두에 서서 장터의 곳곳을 행진하며 ‘조선독립만세’를 열창하였다. 일제 경찰은 만세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당진경찰서의 경찰력을 급파하였다. 만세시위가 마무리될 시점에 도착한 당진경찰서의 순사들이 대형 태극기를 발견하고, 그것을 빼앗으려는 과정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여 4명의 부상자가 발생하였다. 이에 분노하여 천의주재소 습격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송재만의 지휘에 따라 김길성(金吉成)·김부복(金夫卜)·김장안(金長安)·김찬룡(金燦龍)·김팔윤(金八允) 등 다른 선봉 행동 대원들과 함께 시위대의 선두에서 주재소에 돌을 던져 시설과 기물을 부수는 등 주재소를 완전히 파괴하고, 해산하여 귀가하였다. 이후 대호지면으로 출동한 홍성헌병수비대에 붙잡혀 서산경찰서에 구금되었다. 1919년 4월 24일의 즉결심판에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이른바 보안법 위반과 소요로 태(笞) 90도(度)를 받고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도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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