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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敬之

敬之

1857. 10. 21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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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沈敬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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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화천(華川)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강원도 화천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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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3)

관련 사건

  • · 화천군 상서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3) 1857년 10월 21일 강원도 화천군(華川郡) 상서면(上西面) 봉오리(峰吾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8일 화천군 상서면의 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과 평양(平壤) 등지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자 화천군 상서면에서도 만세운동을 일으키고자 하였다. 3월 27일, 같은 마을에 사는 이준극(李俊極)의 집에서 뽕나무 묘목 심는 것으로 열린 마을회의에 참석하였다. 회의가 끝난 후 10여 명이 남아서 논의를 이어가던 중 구장(區長) 이창선(李昌善)이 만세운동을 제의하였다. 이에 박용구(朴容九)와 김광필(金光弼)이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권유하였고, 이때 만세운동에 동의하면서 거사 계획을 논의하게 되었다. 주도자들은 다음날 화천읍에 장이 서는 것을 이용하여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의하고 지역을 나누어 주민들을 동원하기로 하였다. 이때 이창선 등과 함께 봉오리 지역의 주민 동원을 맡아 주민들에게 만세운동의 취지를 알리고 동참을 권유하였다. 1919년 3월 28일, 만세운동 당일 새벽에 주도자들과 함께 봉오리 뒷산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만세를 부른 후에 출발하였다. 봉오리 인근 산기슭에 주민들이 모이자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선두에서 태극기를 앞세우고 주민들을 이끌었으며 주민들은 손에 몽둥이와 괭이·낫·돌을 들고 상서면 사무소로 향하였다. 시위대가 봉오리와 파포리(巴浦里) 강을 지나 면사무소에 도착하자 1,000여 명의 시위대는 면사무소를 둘러싸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고, 면장 정종하(鄭鍾夏)와 서기에게 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권유하였다. 시위대의 권유에도 면장과 서기가 거부하자 이들을 끌어내고 면사무소를 돌과 몽둥이 등으로 파괴하였다. 이후 시위대를 이끌고 화천읍으로 향하였으며 가는 길에 헌병 보조원과 일본인 도로공사 기수(技手) 1명을 더 붙잡아 시위대 앞에 세우고 나아갔다. 만세를 부르며 행진하는 시위대에 논미리(論味里)·구운리(九雲里) 등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합류하면서 시위대는 어느새 2,000여 명을 헤아리게 되었다. 정오 무렵, 신풍리(新豊里) 앞 주막거리에서 시위대는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머물렀다. 이때 만세운동 소식을 접한 일경이 화천분견소(華川分遣所) 헌병과 춘천 수비대를 현장에 급파하였고, 군경은 점심을 먹던 시위대를 향하여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하였다. 이 총격에 4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주도자들이 현장에서 붙잡혀 군중들도 해산하게 되었다. 이때 붙잡혀 1919년 7월 5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예심을 받고 공판에 부쳐졌다. 같은 해 9월 18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소요죄로 징역 3월, 집행유예 2년을 받고 풀려났으나, 약 6개월 여간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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