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몽상
申夢相1894. 5. 8 ~ 1972. 12. 19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1993)
관련 사건
- · 산청군 산청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1993) 1894년 5월 8일 경상남도 산청군(山淸郡) 산청면(山淸面) 색동리(塞洞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22일 일어난 산청군 산청면 읍내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시위를 주도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산청면 읍내 만세시위 계획은 1919년 3월 일본 도쿄(東京)에서 유학하고 있던 오명진(吳明鎭)이 독립선언서를 구두 밑창에 숨겨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되었다. 오명진은 만세시위를 위해 뜻을 같이하는 지역 민족주의 인사들과 회합하였다. 비밀 회합은 3월 18일 저녁 색동리 수계정(修禊亭)에서 이루어졌다. 오명진은 가져온 독립선언서를 회람한 후 만세시위를 제안하였다. 이때 민영길(閔泳吉)·신창훈(愼昌勳)·신영희(申永熙)·오원탁(吳元卓)·최오룡(崔五龍) 등과 함께 참가하여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리고 모임 참여자 모두는 독립운동에 생사를 같이 할 것을 맹세하는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거사일은 읍내 장날인 3월 22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 태극기 등 시위에 사용할 도구 준비와 군중 동원을 위한 연락 등과 관련하여 각각 역할 분담을 하였다. 이때 신창훈과 함께 산청면사무소의 등사판을 신영희의 집으로 가져와서 이틀에 걸쳐 독립선언서와 결의서, 태극기 약 2,000장을 등사하였다. 만세시위 준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나, 거사를 하루 앞둔 3월 21일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관련한 인사 모두가 붙잡혔고, 준비한 시위 물품도 모두 압수되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이는 산청군수 홍승균(洪承均)을 포섭하여 만세시위의 규모를 키워보려고 했던 주도자들의 의도가 역으로 밀고 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3월 22일 읍내 만세시위는 2,000명의 대규모 군중이 참여한 가운데 격렬하게 진행되었다. 이 일로 붙잡혀 일제 경찰의 가혹한 조사를 받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졌다. 결국 1919년 5월 6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이른바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3월을 받고, 대구감옥에서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배석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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