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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만준

辛萬濬

1875. 6. 10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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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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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남 이원(利原)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함경남도 이원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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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애족장(2012)

관련 사건

  • · 이원군 남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애족장(2012) 1875년 6월 10일 함경남도 이원군(利原郡) 남면(南面) 포항리(浦項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3월 11일 이원군 남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평양·안주·의주·선천·원산·진남포에서 일제히 만세운동이 일어났으며 이내 만세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3월 5일 독립선언서와 만세시위 소식이 함경남도 이원군 일대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3월 10일 이원군 서면에서 만세시위가 시작되었다. 이후 이원군 동면·남면·서면을 중심으로 만세시위가 계속해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영향을 받아 3월 11일 오후 1시 무렵 남면 차호시장에서 시작한 만세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날 시위는 김탁(金鐸)을 비롯해서 용항리, 하차호리, 상차호리, 포항리의 주민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조선독립국’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는 깃발을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면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주도세력들이 시장에 모여 있는 군중들의 만세시위 참여를 독려하자 시위대는 1,000여 명에 이르렀다. 시위대와 함께 차호헌병주재소, 면사무소, 공립보통학교, 야소교회당 일대를 행진하면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다. 김탁·장병삼(張炳涉)·신종규(辛宗奎)·강응삼(姜應三)·전원숙(全元淑) 등은 시위대의 행진 중간중간에 “조선 독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연설하였다. 시위대의 일원으로 차호공립보통학교에 모여서 독립선언서 낭독과 독립연설 행사에 참여하였다. 이날 만세시위는 오후 4시 무렵 시위대가 해산하면서 종료되었다. 이원군 남면 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군경에게 붙잡혔다. 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과 출판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24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재차 불복하여 “본인의 행동은 정의 인도에 의한 의사 표현이기에 무죄”라고 주장하며 상고하였지만 같은 해 10월 25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판결문(고등법원, 1919. 10. 25) [판형3]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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