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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만쇠

申萬釗

1876. 12. 10 ~ 1944. 1.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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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서 문화해설사

AI 역사 길잡이

지금 알아보는 인물 · 신만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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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청양(靑陽)3.1운동

지도 위치

시·도 대표 지점

이 위치는 충청남도 청양 지역을 표시하기 위한 대표 지점이며, 실제 출생지·활동 장소의 정확한 지점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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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4)

관련 사건

  • · 청양군 정산시장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어려운 낱말은 오른쪽 국어사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대통령표창(2004) 1876년 12월 10일 충청남도 청양군(靑陽郡) 정산면(定山面) 역촌리(驛村里)에서 태어났다. 이명으로 신원택(申元澤)을 사용하였다. 1919년 당시 농업에 종사하였고, 4월 5일과 6일에 일어난 정산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청양군 정산면의 만세운동은 홍범섭(洪梵燮)·임의재(任毅宰)·윤석희(尹錫禧)·홍세표(洪世杓)·박상종(朴商鍾) 등 백곡리(白谷里)의 유림들이 주도하였다. 이들은 4월 5일 오후 3시경부터 정산시장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시장에 나온 사람들에게 태극기를 배포하며 만세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에 일제는 헌병들을 즉각 출동시켜 만세시위의 해산 명령과 함께 시위를 주도한 30여 명을 강제로 끌고 갔다. 이날은 정산시장의 장날로 시장에 나왔다가 일제 헌병이 만세시위자들을 강압적으로 끌고가는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700여 명으로 불어난 만세시위대와 함께 헌병분견소로 달려가서 끌려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한 만세시위를 펼쳤다. 시위대는 끌려간 사람들을 대신하여 정산향교(定山鄕校) 직원인 권흥규(權興圭)가 지휘하였는데, 일제 헌병의 발포로 현장에서 사망하였다. 이를 계기로 시위는 다음날 목면(木面)으로 확대되었다. 4월 6일 아침, 사람들과 함께 헌병주재소로 가서 권흥규의 친인척들과 함께 시신을 인수하여 고인의 자택이 있는 목면 안심리(安心里)로 향하는 운구에 참여하였다. ‘배일사권공지구(排日士權公之柩)’라고 쓴 명정(銘旌)을 선두에 세운 운구행렬이 지나는 길목마다 많은 주민들이 운구행렬에 합류하여 1천여 명의 규모로 확대되었다. 운구행렬이 지곡리(池谷里)를 지날 즈음 ‘조선독립만세’가 연창되면서 운구행렬과 만세시위대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일제는 만세시위를 해산시키기 위해 공주(公州)의 헌병을 지원 병력으로 급파하였는데, 이들은 ‘조선독립만세’를 절규하며 이동하는 권흥규의 운구행렬을 보자마자, 무차별로 발포하였다. 이로 인해 권흥규의 조카딸과 명정을 쓴 권영진(權寧鎭) 등이 현장에서 사망하였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참극이 전날에 이어 또다시 발생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 이후 일제 헌병의 참여자에 대한 조사, 색출 과정에서 붙잡혀 청양헌병분견소로 끌려갔다. 1919년 4월 24일 즉결 심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태(笞) 90도(度)를 받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4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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