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환
申東煥1878. 8. 2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15)
관련 사건
- · 평산군 평산읍 장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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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15) 1878년 8월 21일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고지면(古之面) 봉암리(鳳巖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평산군 평산장터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평산군의 만세시위는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추진되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독립선언서 낭독과 만세시위를 앞두고 천도교주 손병희(孫秉熙)는 이동락(李東洛)에게 고향인 황해도 평산군으로 가서 만세시위를 이끌어 줄 것을 제안하였다. 이에 3월 2일 이동락은 평산군으로 향했지만, 평산군에 도착하자마자 일제 헌병에게 거주 제한을 당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동락은 금천군에 사는 천도교인 강창선(姜昌善)을 통해서 평산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나도록 준비하였다. 1919년 3월 7일 평산군의 천도교인들은 평산읍 장날을 맞이하여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일제 관헌의 무력 진압에도 불구하고 평산읍 만세시위는 이튿날인 3월 8일에도 지속되었다. 일제 관헌은 평산읍 만세시위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이후에도 평산군 일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함으로써 만세시위가 평산읍 일대에서 재개되거나 확대되는 것을 저지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며, 3월 말 평산군 만세시위는 재기되었다. 3월 29일 밤에서 3월 30일 새벽 사이에 평산읍의 은담리(隱潭里)와 빙고리(氷庫里)에서는 ‘대한국독립만세’라는 문구가 적힌 전단이 발견되었고, 평산헌병주재소 게시장(揭示場), 군 게시장, 평산군청 문 앞, 평산공립보통학교에 태극기가 걸렸다. 3월 31일 오후 1시 무렵 평산군 인산면 기린리 장터에서는 장날을 맞이하여 개신교 신자들을 비롯해서 인산면과 상월면(上月面)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만세시위가 열렸다. 일제 군경은 기린리 장터를 행진하는 시위대를 강경하게 진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시위대 1명이 사망하였다. 일제 군경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인 4월 1일에도 기린리 장터에서는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자료의 한계로 어떠한 시위에 참여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일제 군경에 의해서 1919년 3월 평산군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붙잡혔다. 1919년 5월 27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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