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민
申東敏1868. 9. 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대통령표창(2006)
관련 사건
- · 김화군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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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2006) 1868년 9월 1일 강원도 김화군(金化郡) 김화면(金化面) 암정리(岩井里)에서 태어났다. 천도교인으로 1919년 3월 2일 김화군에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김화군에서 만세운동이 일어나는데 영향을 미쳤고, 이로 인해 붙잡혀 옥고를 겪었다. 암정리 천도교회 전제원(典制員)으로 근무하던 중 1919년 3월 2일 새벽 5시 경 신윤철(申允徹)·안상덕(安相德)·임종환(林鐘煥)·채장숙(蔡章淑) 등이 찾아와 서울의 만세운동 소식을 알렸다. 중앙총부의 안상덕이 독립선언서를 보이며 내용을 알려주고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여 조국의 독립을 이루자고 하였다. 이러한 뜻에 공감하여 기쁜 마음으로 결의하였고, 안상덕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장을 건네받았다. 비밀리에 배포하라는 안상덕의 권고에 따라 큰 아들 홍섭(弘燮)과 같은 마을 천도교 신자 박윤섭(朴允涉)(또는 박윤실(朴允實))에게 독립선언서를 배부하라고 전하였다. 두 사람은 다음날 새벽 3시경 독립선언서 5장씩을 가지고 김화군 각처에 배부하게 되었다. 그리고 3월 2일 낮 4시 경 근북면(近北面) 백덕리(柏德里)에 사는 윤규호(尹圭祜)를 교회당으로 불러서 안상덕에게 들은 만세운동 소식을 전하면서 독립선언서를 배포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배포를 권유하였다. 이에 윤규호도 동참을 약속하자 독립선언서 5장을 건내주었고, 윤규호도 이날 읍내의 교회와 주막에 독립선언서를 붙여 마을 사람들에게 만세운동을 알리게 되었다. 이러한 적극적인 활동으로 김화군에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게 되었으며 이후 지역의 만세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김화군을 비롯하여 강원도 전역에 독립선언서가 배포되면서 일경은 주도자 체포에 나섰고 결국 3월 초에 붙잡혔다. 1919년 4월 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지만, 같은 해 4월 18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재차 상고하였지만 그해 5월 8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정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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