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관식
申寬湜1881 ~ 미상
지도 위치
포상 정보
- · 애족장(2011)
관련 사건
- · 평산군 보산면 만세운동
독립운동 활동 기록
공훈 자료에 수록된 활동 기록을 바탕으로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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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족장(2011) 황해도 평산군(平山郡) 보산면(寶山面) 산막리(山幕里) 출신이다. 1919년 당시 판결문에 따르면 39세로, 1881년생으로 추정된다. 4월 7일 평산군 보산면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1919년 4월 7일 보산면 운천리(雲川里) 모래사장에서 산막리(山幕里)에 거주하는 조영(趙榮)과 함께 300여 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만세시위를 일으켰다. 다음날인 4월 8일 남천헌병분견소 헌병과 헌병보조원 3명이 산막리에 출동하였고, 헌병대는 주민 50여 명을 모아놓고 만세시위 주도자를 색출하였다. 그 과정에서 일제 헌병에 의해 붙잡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헌병이 쏜 총에 조백선(趙伯善)이 중상을 입었다가 후에 사망하였으며, 현장에 있던 2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에 격분한 조백선의 동생 조정삼(趙丁三)을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헌병을 붙잡고 몽둥이로 구타하였다. 이후 보산면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는 이유로 일제 헌병에게 붙잡혀 재판에 회부되었다. 해주지방법원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 소요죄, 상해죄, 살인미수죄로 징역 2년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7월 31일 평양복심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에 “본인은 조선사람으로 독립만세를 불렀을 뿐이며 헌병에게 폭행을 가한 행위와는 무관하다.”며 상고하였으나. 같은 해 10월 9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원심이 확정되어 옥고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한승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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